[골프 경영학] '기브'가 게임을 망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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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A씨의 퍼팅이 80cm 정도 남았다. 그걸 넣어야 트리플보기다. 쇼트퍼팅을 넣어야 트리플보기면 그린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겠는가.

A씨는 열을 받을대로 받은 상태. A씨는 '이 정도 거리는 기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선이 트리플보기니 '기브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스스로의 판단이다. 그러나 필드의 속성이 그리 녹록지 않다. 동반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딴전을 피운다. '마저 넣으라'는 뜻이다.

여기서 A씨는 '마지막' 실수를 저지른다. 열 받은 A씨는 '이 정도야 선처해 주겠지'라는 전제하에 집중 없이 대충 퍼팅을 한다. 당연히 그 쇼트퍼팅은 홀을 벗어난다. 다음 홀로 이동하며 캐디가 묻는다. "스리 퍼팅 하셨으니까 더블파(쿼드러플 보기)지요." 원칙대로, 룰대로 하면 물론 더블파다.

더욱이 동반자들 입에서 "그건 기브였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니 누가 뭐래도 더블파다. A씨는 "정신차려 퍼팅했으면 그 거리는 넣을 수 있었는데 괜히 대충 쳤네"라며 후회한다. 위와 같은 상황은 필드에서 흔한 풍경이다. 골퍼들은 누구나 그 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경우 자칫하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사태까지 발전한다.

여기서의 교훈은 실로 간단하다. 세상이나 골프나 그 모두가 원칙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골프에서는 알게 모르게 원칙을 간과하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기브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첫홀 올보기도 당연시되고, 멀리건도 남발된다.

골프에 있어 그 같은 너그러움은 한국에서 가장 심하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골퍼가 홀아웃을 원칙으로 한다. 동남아 골퍼들도 열타건 스무타건 제대로 다 적는다. 한국 골퍼들은 "시간에 쫓겨 할 수 없이 기브를 준다"고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건 다른나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하나의 원칙이 무너지면 줄줄이 다른 원칙도 무너진다는 점이다. 60cm 거리를 기브 받으면 1m 거리도 기브를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내가 멀리건을 한번 받으면 나머지 동반자 세명도 멀리건을 주장한다.

결국엔 룰이 없어지고, 룰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면 필경 트러블이 발생하는 게 세상의 흐름이다.

국가나 가정이나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회사의 원칙이 지켜져야 개인의 원칙도 바로 설 것이고, 그래야 모든 것이 원칙대로 돌아가며 트러블이 예방될 것이다.

김흥구 (www.GOLFSKY.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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