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중독된 중국 경제 … 성장률 3%대로 추락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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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차이나 크런치(중국 돈가뭄)가 한풀 꺾였다. 26일 상하이 은행 간 단기자금시장에선 7일짜리 이자가 이틀째 내려 7.4%에 이르렀다. 지난주 말 11%대에 이르던 것이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언질을 준 덕분이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은 25일 저녁에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하이증시 등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상하이종합주가지수는 이날까지 6일 연속 떨어졌다. 1940선을 겨우 지켰다. 올 최고치와 견줘 20% 이상 내려앉은 수준이다. 신용경색이 한고비를 넘긴 듯한데 증시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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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명문 비즈니스스쿨인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光華管理學院)의 마이클 페티스(57·미국 국적) 교수에게 26일 전화를 걸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11년 그를 “파란 눈의 경제분석가 중 가장 뛰어난 중국 금융통”이라며 “중국 정부의 입김이나 서방 경제학자들의 통념에서 자유롭다”고 평했다.

 -중국 경제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오랜 기간 곪은 게 터지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중국 민간과 지방정부의 빚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여기(한국)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계획적으로 일으킨 경색이라고도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아니다. 중국 경제정책을 지휘하는 리커창(李克强) 팀이 신용버블을 감지하고 돈줄을 죄는 등 나름대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최근 2주 동안 이어진 신용경색을 그들의 작전 탓만으로 볼 수 없다. 돈가뭄이 발생하자 그들도 놀란 모습이었다.”

예상보다 심한 돈가뭄 … 리커창도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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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부가 금융을 쥐고 있는데 어떻게 신용거품이 일어날 수 있는가.

 “서방 시각에서 보면 거품은 자유방임 탓이다. 하지만 중국의 신용거품은 규제가 낳았다. 인민은행과 감독 당국이 은행 대출 등을 통제하자 ‘규제 밖 금융시장’이 커졌다.”

 -그게 그림자 금융의 중국 버전인가.

 “맞다. 중국 버전은 서방 그림자 금융과 완전히 다르다. 서방 것은 시중은행권 밖의 금융시장이다. 투자은행·보험사·헤지펀드 등으로 이뤄졌다. 파생상품이 주요 수단이다. 중국 버전은 은행 시스템 내 금융시장이다. 수출기업, 콜시장, 시중은행, 인민은행 등이 줄줄이 연결돼 있다.”

 뜻밖의 얘기였다. 기자가 캐묻자 페티스 교수는 “중국 버전은 시중은행이 개입된 머니게임”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많은 수출 기업들이 신용장을 위조하는 방식으로 홍콩에서 달러 자금을 빌린다. 장부상 수출대금이지만 사실은 값싼 달러자금 차입이다. 연 2% 정도 이자를 물면 된다. 수출기업들은 달러를 시중은행을 통해 인민은행에 팔고 위안화를 받아 콜시장에 내놓는다. 그 대가로 연 4%를 웃도는 이자를 받는다. 외환 보유액이 불어나고 동시에 중앙은행이 관리할 수 없는 돈이 시중에 풀린다.

 -인민은행이 달러를 사주지 않으면 되지 않나.

 “실제 지난달부터 인민은행이 수출기업 달러 환전을 제한했다. 그 바람에 홍콩을 경유한 수출 증가율이 4월 19%에서 지난달엔 1~3%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게 신용경색의 발단이다. 수출기업이 콜시장에 내놓는 자금이 마른 것이다.”

 -차이나 크런치는 이제 진정될까.

 “인민은행이 극단적인 상황은 막을 것 같다. 단기적인 돈가뭄은 해갈될 듯하다. 하지만 신용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전망이다. 그 의지를 시장에 이미 내비쳤다. 돈가뭄에 은행들과 기업들이 아우성칠 때 인민은행은 내버려둔 게 그 방증이다.”

 -신용거품이 제거되면 중국 경제는 잘될까.

 “(껄껄 웃으며) 중국은 빚에 의존해 커온 경제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빚에 의존했던 것보다 더 심하다. 중국 부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보다 높다. 신용거품이 제거되면 성장률은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기업과 지방정부의 투자 확대가 바로 중국 성장의 엔진이었다. 그런데 그 투자자금 중 대부분이 부채였다. 인민은행 등이 돈줄을 죄자 지방정부와 기업들은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서 돈을 조달했다.”

극한상황은 막겠지만 돈줄 계속 죌 것

 -빚을 끌어 써도 돈을 잘 벌면 되는 것 아닌가.

 “중국 제철소에서 생산한 철이 공급 과잉이다. 과잉 중복 투자가 공급 과잉을 낳고 있다. 순이익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지방정부가 늘고 있다.”

 한국은 90년대 기업들이 빚이 너무 많아 위기를 맞았다. 이자를 못 내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그 파장이 은행권을 엄습했다. 그렇다면 중국도 한국처럼 금융위기를 겪는 것인가. 페티스 교수는 “결코 아니다. 한국이나 미국이 겪었던 형태의 위기가 중국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 정부가 기업이나 지방정부 부실이 은행을 뒤흔들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

 “중국이 일본 타입의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본다. 너무 많이 지어진 생산시설과 도로·항만 등을 헐어 없애지 못한다. 이것들이 이자도 못 내는 수익을 내면서도 생산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다.”

 -내수가 성장을 이끌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리커창 팀이 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내수 확충이다. 하지만 내수가 중요한 성장엔진이 되기까지는 적어도 10년 이상 걸린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그때까지 중국 경제는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이나 20년’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본처럼 ‘잃어버린 10~20년’ 가능성

 -저성장 시대는 언제쯤 시작될까.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올해는 한결 뚜렷해질 것이다. 중국 정부의 올 성장 목표치는 7.5%다. 하지만 난 잘해야 7% 정도로 본다.”

 -중국 성장률이 떨어진다면 어느 선이 바닥일까. 5~6% 정도인가.

 “난 3% 정도까지 추락할 것으로 본다. 이런 바닥이 단기에 끝나지 않고 몇 년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 경제가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데 .

 “내 예측이 적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이 참에 중국의 3% 성장까지 대비하는 게 좋을 듯하다. ”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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