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쥐어짜기식 세무조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창규
경제부문 기자

정보기술(IT)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대표는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꼽힌다. 10년 전 창업한 회사는 안정 궤도에 올랐고, 최근엔 관련 벤처기업을 2~3개 인수해 몸집도 키웠다. 30대의 젊은 나이인 그는 꾸준히 회사의 기술력을 키워 한국의 대표적인 IT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야망을 가져왔다.

 얼마 전 이 회사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A대표는 ‘세무조사’란 말에 긴장됐지만 그동안 성실하게 세금을 냈으니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세무조사요원이 회사에 들이닥쳤다. 팀장인 사무관과 팀원 6명으로 구성된 조사팀이었다. 며칠간 각종 서류를 꼼꼼히 따져보더니, 조사팀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거 거둬들일 세금이 없잖아.”

 그러면서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순간 A대표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서 추가로 거둬들일 세금이 없다면 칭찬을 해줘야지 이게 짜증낼 일인가.”

 그날 이후로 조사요원들의 자세는 갈수록 고압적이 됐다. “이 서류 가져오라, 저 서류 가져오라”며 별로 필요하지 않은 자료까지 요구했다. 이렇게 한 달이 흘렀다. A대표는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세무조사 기간 내내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받는 것 같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이 팀장은 “한 달간 세무조사했는데 거둬들일 게 없으면 되겠느냐. (조사요원의) 월급 정도라도 거둬 가야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결국 이 회사가 세금을 10억원가량 더 내는 걸로 세무조사는 마무리됐다.

 A대표는 “국세청이 중소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요즘 만나는 벤처기업인 10명 중 3명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벤처기업가도 “세무조사 받는 기업은 강도가 예전보다 훨씬 세졌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고 전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올해 3월 국세청장으로 내정되자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나 서민층에 지나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충분히 유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임 뒤에도 틈날 때마다 기업의 의욕을 떨어뜨리거나 쥐어짜기식 세무조사는 않겠다며 불안감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4월까지 국세청이 거둬들인 세수는 70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보다 8조7000억원이나 덜 걷혔다. 세수 부족은 국세청 직원에겐 ‘더 거둬야 한다’는 실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런 부담이 조사요원의 어깨를 짓누르는 구조를 놔두고선 쥐어짜기식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국세청장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을까.

김창규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