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웅크림의 호착, 7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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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결승 1국>
○·이세돌 9단 ?●·구리 9단

제6보(67~83)=이세돌 9단의 백△가 하변을 겨냥했지만 구리 9단은 오히려 67, 69의 절단을 감행하며 공세로 나왔습니다. 승부는 언제나 한 걸음 차이거나 한 수 차이죠. 약간의 위험이 내포된 공격이지만 구리는 지금이 유일한 타이밍이라고 본 겁니다. 똑같은 절단이라도 69의 절단이 ‘참고도1’의 절단보다 좋습니다. 엇비슷한 것 같지만 귀의 사활이 달라지는 게 큰 차이죠.

 72로 이었을 때 73이 등장했는데요, 이 한 수를 깊이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73이 귀의 공격을 노리는 수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생(我生) 연후 살타(殺他) 아니겠습니까. 먼저 살아야 공격도 가능한 법인데 73은 이 자체로 삶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공격한다면 ‘참고도2’ 백1이 유일한데 흑2의 맥점으로 아무 탈이 없습니다. A, B가 맞보기 아닙니까.

 큰 승부는 운이라고 합니다만 비슷한 실력일 때 운이 거론되는 거죠. 실력 차이가 있으면 운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73 같은 수를 보면 ‘실력’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전진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는 수. 쉬워 보이지만 얼른 떠오르지 않는 수….

 중앙 미생마는 이제 흑과 백이 2개씩 도합 4개가 됐습니다. 백 쪽이 미세한 차이지만 조금 더 엷어 호흡이 가빠진 형국입니다. 귀의 백도 완생은 아니고 치중하면 패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스러운 난전은 이세돌 9단의 전매특허라서 어디로 흘러갈지 흥미진진할 따름입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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