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인 히딩크, 한국역사에 족적 남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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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차례의 경이적인 승리에 대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는 히딩크.
네덜란드 팀은 충격적이게도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했지만 네덜란드 축구팬들은 준결승전에 자기들을 대표할 사람을 내보낸 셈이 됐다.

한국 대표팀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월드컵 공동 개최국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끈 주역으로서 이전에 단 한 경기도 승리한 적이 없던 이 나라안에 흥분의 열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는 "그들은 자신들은 물론 전문가들 조차도 믿지 못하는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55세의 히딩크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변을 만들길 염원했던 한국 관료들이 계약을 맺고 데려온 감독이었다. 한국은 본선에 5번 출전해 단 한 차례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었다.

히딩크 감독은 1998년 네덜란드팀이 준결승까지 오르게 했고 당시 네덜란드는 승부차기로 브라질에 패했다. 4강에 오르는 과정에서 네덜란드는 한국을 5:0으로 눌렀는데 이는 히딩크 감독의 새 대표팀인 한국팀의 기량이 어느 정도까지 향상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또다른 예이다.

히딩크는 한국이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을 꺾은 것과 관련한 논쟁에 가담하길 꺼려왔다.

한국과 싸운 유럽 국가들이 성을 내면서 주심들에 대한 비난을 퍼붓자 히딩크는 "강팀이라면 경기를 통해 약소한 팀에게 본때를 보여줘야하는 법이다"면서 "주심이나 선심을 비난하는 건 제법 쉽다. 물론 그들도 선수나 감독들처럼 실수를 한다"고 말했다.

히딩크의 이러한 침착한 태도는 그가 한국의 붉은 악마 축구팬들의 영웅이 되는데 일조했다. 인파 속에 등장한 깃발 중에는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고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

그는 선수시절 네덜란드의 데그라프샤프와 PSV 아인트호벤의 미드필더로서 한번도 명성을 크게 떨쳐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감독으로선 활약해 PSV가 3번의 네덜란드 타이틀을 따내고 1988년엔 유럽컵을 거머쥐게 했다.

그가 1995년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기 전에는 터키의 페네르바세와 스페인의 발렌시아를 맡았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뒤에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1년 그리고 레알 베티스에서 6개월간 있다가 한국 감독으로 취임했다.

히딩크는 강호들과의 연속 평가전에 착수했다. 처음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서서히 그는 깔끔한 패스, 빠른 공격, 협력 수비 등 한국팀 내에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팀의 놀라운 정신력을 일궈냈다. 이는 절대로 자만심을 용납하지 않았던 네덜란드팀 감독 시절의 또 다른 유산인 것이다.

준결승전의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히딩크는 한국대표팀이 모든 기대를 뛰어넘는 기록을 달성하게 했으며 아시아 전체 축구의 미래도 바꾸어 놓았다.

SEOUL, South Korea (CNN) / 김내은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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