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일본 언론 '북한 때리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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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이후 일본 언론.출판의 최대 화두는 '납치'였다.

그 후 북.일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북핵 문제까지 겹치면서 분위기는 '북한 때리기'로 변했다. 신문.TV에서는 북한 이야기가 빠지는 날이 없다. 대부분 김정일.인권.탈북자.북핵 등이 소재다.

대형서점에도 10여권의 신간 북한관련 서적이 진열돼 있다. '일.조(日朝) 교섭'등 학술서적도 있지만 다수는 '납치가족과 함께 한 6년 전쟁''메구미, 엄마가 반드시 도와주마''북조선 강제 수용소''납치의 해류(海流)''나는 김정일의 최고 사설경호관이었다''내가 본 북조선-핵 공장의 진실''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등 비판일색의 서적이다. 납치 피해자.관련단체 인사, 전직 북한공작원.조총련 인사 등이 쓴 글이다.

일부 언론의 '북한 때리기'는 갈수록 자극적으로 흐르는 인상이다. 잡지 '사피오'는 최신호 겉표지를 '특별리포트-김정일의 노동 미사일이 일본을 공격하는 날'이란 제목으로 장식했다.

한 일본인 북한문제 전문가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데 비판논조가 아니면 말하기 힘들어 언론을 상대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선정적인 보도를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일본인 기자.교수.영화감독 6명으로 구성된 '인권.보도 연락회'는 지난달 펴낸 '검증-납치자 귀국과 매스컴 보도' 책자에서 "납치는 죄악이다. 그러나 선정적인 캠페인성 보도는 재일조선인 괴롭히기.일본인 의식 고양.식민지 지배 망각 등 '이상한 것'들을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마이니치(每日)신문 독자투고란에 실린 '북조선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이란 제목의 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시즈오카(靜岡)시에 사는 일본인 초등학생(10세)이 쓴 글이었다.

"엄마한테 '북조선 사람은 모두 나쁘냐'고 물은 적이 있다. TV를 보면 북조선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납치는 잘못됐지만 일본인 가운데도 살인.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을 위해 살려는 북조선사람도 있지 않을까."

오대영 특파원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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