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창업 생태계 파괴하는 인터넷 공룡 ‘네이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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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토종 인터넷 검색업체로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네이버(NAVER)의 독과점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PC 검색시장의 75%, 모바일 검색시장의 67%를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가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신생 벤처기업들이 어렵사리 개척한 시장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네이버의 신시장 진출이 스스로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벤처기업이 시작한 사업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베낀 후 자사의 막강한 광고력으로 경쟁 업체를 고사시키는 방식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먼저 시장을 개척한 신생 기업을 돈을 주고 인수하거나 사업 제휴를 통해 상생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엇비슷한 서비스를 만든 후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자사의 포털사이트를 동원해 시장을 독식한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자금력과 마케팅 능력이 달리는 신생 벤처기업들은 유망한 사업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놓고도, 네이버가 달려들기만 하면 채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산업의 간판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가 신생 벤처기업들의 싹을 자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는 네이버라는 공룡기업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네이버’식 사업 확장 전략이 국내 창업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네이버 자신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룡 한 마리가 초원을 휩쓰는 구조에서는 더 이상 경이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기 어렵고, 시장을 더 넓힐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다 네이버의 독과점 횡포에 대한 역풍은 지금까지 네이버가 해오던 사업 방식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 공산이 크다. 이미 정치권은 네이버의 불공정 사업 행태를 막을 각종 규제 조치의 법제화를 검토 중이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네이버의 운영사인 NHN에 대해 불공정거래 혐의로 조사에 들어갔다. 네이버의 독점적 지위가 경쟁을 부당하게 저해해 경쟁 업체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시장의 다양성을 해쳐 소비자의 선택권과 후생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네이버가 척박한 국내 IT 시장 여건 속에서 세계적인 경쟁 업체를 누르고 오늘날 시장을 석권할 정도로 성장한 데는 각고의 노력과 창의성이 뒷받침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압도적인 시장 선도 업체로 덩치가 커진 이후에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한 경쟁을 일삼는 안이한 자세로는 더 이상의 성장도 어렵거니와 현상 유지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신생 벤처기업들을 보듬고 함께 시장을 키워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지 않는다면 사회적 반발과 규제의 역풍에 휘말려 자칫 공멸의 길로 들어설 우려가 크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변화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