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베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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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불교에서는 원래가 비밀이란 명백하게 밝히는 현로에 반대되는 말이다. 쉽사리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가르침을 뜻했던 비밀이 이제는 사람에게 밝히지 않는 내밀의 뜻으로 통용케 되었다.
비밀을 나누어 갖는 사이라면 흔히 생각하듯이 친밀한 사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밀이라는 것의 성격이 친밀한 사이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잘 지켜준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꼭 친밀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 것이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이상이 말한 적이 있다. 그와는 다른 뜻에서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괴로운 일인 동시에 야릇한 쾌감까지도 안겨주는 수가 있다. 특히 남의 비밀을 알고 했다는 것은 더욱 사람을 기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비밀을 즐기는 사람은 비밀을 언제나 만들어 가며 있다. 또 밑천 한푼 없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게 비밀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비밀이란 양파 속과도 같은 것이다. 속에 엄청난 것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수많은 껍질이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지만 막상 눈물을 흘려가며 벗겨보면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사실 비밀이란 간직할만한 가치가 없거나, 간직하기엔 너무 좋은 것을 말한다. 또는 자기는 간직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이르면서 보관을 당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 서울시경에 설치됐다는 종합 상황실 속에 간직된 비밀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대간첩 작전에 관한 것은 몰라도 살인, 강도, 교통사고, 화재. 미아, 가출 신고 등까지 「비밀」 속에 가둬 두게 했다니 어지간히 비밀을 즐기는가 보다. 또 그렇게 해서라도 이상의 말대로 마음을 채울 생각이 난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경측에서는 여기에 업무 일원화란 명분을 붙이고 있다. 그렇지만 밖에서는 최근에 잇달아 일어난 대사건들에 대한 경찰의 수사 부진을 덮어두기 위해서, 보다 현저한 보도 장막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다. 여자는 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신비의 「베일」을 쓴다지만, 이건 얘기가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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