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가친의 계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여름은 놀라 지치고 죽어가는 정원의 꿈속에서 미소짓는다….
「헤세」의 시한구절이지만, 이젠정말 조락의 계절. 아직 낙엽은없어도 가을의 고독과 애상은 을씨년스럽게 피부로 느껴지는때다.
여름내 한산하던 술집이 다시붐비기 시작한것도 삶의애환과 고독을 달랠길 없는 가난하고 어진 남성들의 계절감각때문이라할까….
봄은 사람을 시인으로 만들지만 가을은 철학자로 만들기 쉬운가 보다. 가을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어쩌면 뜨는 해보다 지는 태양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같은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뭣인가를 느끼게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이렇게본다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사실은 사색의 계절이라고하는게 더 옳을듯하다. 아무리 좋은책이라도 가슴에 스며드는 쓰라림을 달래주지는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인스턴트지식」이며「미니교양」등을 위한 책들이 판치고 책을 읽었다는 것을 뽐내기위해서 독서를하는 사람이 많을때에는 한시간의 독서보다도 5분간의 사색이 얼마나 아쉬워지는건지 모르겠다.
사실 그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그리 자랑거리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생각하지않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신을 억압하고 사고의 자연적인 등불을 꺼놓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의 발표에 의하면 각국의서적발행부수는 소련,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의 순위로 되어있다. 인구1인당 발행부수로따진다면 작년 한햇동안에 2만4천6백종을 발행한 일본이 세계제1로 되어있다.
이것을 부러워할 필요는 별로없다. 연간 2, 3천종도 발행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창피하게 여길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창피한 것은 오히려 책도 적게나오고, 책읽는 사람도 적은데다 사고의 습성마저 잃어버려가고 있는 우리네 생활인 것이다. 어쩌면 이러다가 생각하는 버릇은 물론이요, 느끼는 기능마저 잃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