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의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컸던 인구의 대이동은 고려조 몽고족의 침입때와 임진왜란 그리고 6·25동난때의 세번이라고 기록된다.
해방, 국토양단, 6·25동란을통한 40년대 후반의인구동태는 쓰라린 우리의과거를 되새겨주는것. 그러나 48년에 2천2만명으로부터시작된 우리 한국의 인구는 67년에 3천만을돌파. 이제 3천6만7천명에 이르렀다.
48년부터 58년에 이르는10년에 인구증가가 3백60만명정도에 그친것은 6·25동란으로인한 인명피해와의료기술의 미비로 인구증가율이 높지 않았던탓이다.
그후 58년부터 67년까지의 9년간은 갑자기 늘어 한해의 증가율이 평균2·8%내외였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인구팽창을 억제하기위한 정부의 노력때문에 67년에는그증가율이 2·4%로 58년이후 가장 낮은 추세에들어갔다. 늘어나는 인구에따라「에너지」의 사용도 48년대의 신탄에서 구공탄을거쳐 석유로까지변해왔다.
48년중 63만톤 생산에그쳤던 석탄은 남벌에의한임산연료의 감소추세와는 반비례적으로 늘기시작, 58년에는 2백67만톤, 67년에는1천2백43만톤에 달했다.
그러나 66년이후에는 유류의 대체로 사양화, 앞으로는 연간1천3백만톤이상의 생산이 어려운 단계에이르렀다.
그대신 유류의 소비량은 48년의4천4백80만「갤런」에서 58년에는 1억7천3백만「갤런」으로 늘어났고 67년에는 10억3천9백만「갤런」으로 급증 하고있다.
이러한 유류소비의 증가는 62년이전까지 국내생산이 안돼 수입이나 또는미군에서 유출되는것으로 충당해 왔던것이 62연이후는국내생산을 바탕으로 늘어나고있는것.
한편 가로등을 포함한 전등수는 발전량의 증가와함께 48년에 2백45만등, 최근(6윌말)에는 7백39만9천등으로 늘어나긴했으나 20년동안 10배나 늘어난발전량에 비추어 미미한 증가이며 동력수요에 말려 그만큼 전화율이 지연되고있음을 반영하고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