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록인수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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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 당선자는 행정 감시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회의록 작성 의무화 및 공개 시스템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국가비전21'의 하나로 천명한 바 있다.

시민적 감시가 가능하도록 "청와대의 모든 회의 기록과 정부의 모든 공식 회의 기록을 의무화할 것"이며, 내용에 따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이를 공개하도록 하고, 공개 여부는 "정보작성 기관이나 행정부가 아닌 독립 심의기구에서 심의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권력 간 감시와 시민적 감시를 중시하는 이러한 관점은 그간 뿌리 깊게 박혀버린 정치에 대한 불신, 행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투명한 정치.행정을 구현해 가는 데 더없이 필요한 방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 회의기록 아닌 공공기록으로

"정책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당선자와 인수위 활동의 전 과정을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기록해 사료적 가치를 가진 백서를 3월 초까지 발간하겠다"는 발언 역시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주요 회의록을 잘 관리하게 하겠다는 정책방향을 백서 발간을 통해 인수위원회가 스스로 실천하겠다는 천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원회의 이러한 생각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찾는 데 모두가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돼야 할 일이 있다. 한마디로 평한다면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의 기록 관련 발언은 "지향은 옳되 내용은 부실하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인용 가운데 '회의 기록'이라는 표현을 '공공 기록'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공공행위는 회의를 통해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회의를 통하지 않은 의사결정이나 집행과정 등의 모든 기록을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내용에 따라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의 공개 여부를 독립 심의기구에서 심의만 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기록을 관리하는 기관 자체를 지금보다 격상된 독립기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인수위 활동을 백서로 발간하겠다는 것도 그렇다. 투명성을 인수위 스스로가 실천하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인수위가 직접 편집하는 백서 자체가 투명하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인수위의 모든 활동.회의.연구 등과 관련된 기록 그 자체를 제대로 관리.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이 백서도 그 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기록학계가 대통령 관련 공공 기록을 제대로 남기는 일에 촉각을 세웠던 것도 인수위원회가 김대중 대통령 관련 기록을 적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인수하도록 촉구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대통령 기록이 그동안 임의로 파기되거나 심지어 개인 사저로 반출돼버린 어처구니없는 경험에 비춰보아 지금의 시점에서 이 일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인수위가 청와대 史料

다행히 학계의 문제 제기가 있자마자 비밀기록을 포함한 모든 대통령 기록의 목록을 인수위에 인계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기록에 대해 심심치 않게 발언해왔던 대통령 당선자나 인수위가 김대중 대통령의 기록을 온전히 인수하는 데에도 스스로 적극적인 대응을 해왔다면 학자들의 이러한 문제 제기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인 인수위의 기록에 관한 '부실'한 대응을 내실있게 바꿔야 한다. 행정자치부 소속 정부기록보존소나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실을 내세우지 말고 인수위 스스로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인수위가 나서 인수.인계의 기본인 기록을 제대로 인수하지 않고 무엇을 인수한다는 말인가. 또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국가 기록관리제도를 정비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갖지 않고 어떻게 투명한 정치와 행정을 구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金翼漢(명지대 교수,기록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