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원전비리, 과거 정권서 내려와 … 전면 재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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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의 가동 중단으로 전력난이 예상되고 있다. 31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직원들이 전력 수급 현황을 살피고 있다. [강정현 기자]

청와대가 ‘원자력 발전소 비리’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부품 불량이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원전 23기 중 절반에 가까운 10기가 멈춰선 사상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자 초강경 모드로 돌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섰다. 박 대통령은 원전사고를 처음 보고받은 지난달 27일 “국민 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바로 세워야지요”라며 원전 가동 중단을 지시했다. 다음 날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강한 어조로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세게 말씀하셔서 참석자들이 놀랐다.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는 한국의 원전 산업도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이런 의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이번 일은 단순한 부품 비리 차원이 아니라 원전 부품의 국산화 전환 과정에서 불거진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라며 “다음주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 등에서 문제 해결에 대한 강력한 요청을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권에서 내려온 근본적인 문제를 이번에 해결하지 못하면 원전사고가 줄줄이 터져나올 수 있다. 박 대통령도 이런 ‘핵폭탄’을 지고 가지 않기 위해 원전에 대한 새로운 시스템을 세우라고 지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특히 이번 비리가 원전 안전의 핵심인 원자로와 연관됐다는 점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감사원이 변전시설 등 원전의 외곽을 운용하는 ‘2차계통’의 부품과 관련된 보증서 위조 사실을 대거 적발했지만 안전과 직결된 원자로 등 ‘1차계통’에 조작된 시험성적서를 활용한 불량부품이 들어갔다는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는데,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국민 안전과 직결된다는 심각성을 고려해 원전 가동을 즉각 중단하고 검찰 고발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자로에 이상이 생길 경우 대형 폭발과 방사능 유출 등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그는 “원자로에 들어간 문제가 된 부품을 모두 교체할 때까지 재가동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전력난이 일어날 수 있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에 따라 원전과 관련된 납품과 업체선정 과정 전반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지시했다. 이전 정부의 원전사업 관련 주체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해 강도 높은 전방위 조사를 예고했다. 그는 특히 “이번 비리에 연루된 평가 업체인 새한티이피는 1996년 정부에서 인증을 받은 1호 업체임에도 부품 검사 장비가 없어 외국에 검사를 의뢰했고, 위조 부품을 납품한 직후인 2010년에는 대한전기협회에서 문제없이 인증을 받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번 조사에서 이 업체 외에도 추가 비리가 드러날 가능성에 대해 예단하지 않고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감사원은 지난해 원전 부품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면서도 이번 사건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 감사 대상은 품질보증서를 위조한 변전 시설 등에 납품한 업체와 관련된 것으로 인증기관의 비리를 통한 사건은 감사 대상이 아니었고 특히 원자로와 관련된 부분은 방사선 문제 등으로 원전 가동 중에는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31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안전과 직결된 부품의 시험성적을 위조해서 납품한 것은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라며 "철저한 수사와 감사를 통해 원인과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부정과 비리에 관련된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엄중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불량부품 업체 전 대표 등 3명 출국금지=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지검 동부지청 수사단(단장 김기동 지청장)은 불량 부품을 만든 JS전선의 전 대표 H씨와 부품의 시험성적을 위조해 원전에 납품하도록 해준 새한티이피 대표 O씨,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담당했던 M씨에 대해 사문서 위조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 등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했다.

글=강태화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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