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15년…그날의 전장|일선 지휘관들의 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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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휴전이 성립된 53년7월27일, 나는 해병제1전투단 1대대3중대장으로 서부전선장단에서 싸우고있었다.
휴전이될 기미는 이미 엿보였고 따라서 휴전이 되기전에 한치의 땅도 더 회복해야한다는 지상명령아래 해병들은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있었다.
열달전에는 사천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 155고지에서 중공군의 추기대공세를 격퇴, 큰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7월에 접어들자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진체 서로가 하루 수만발의 대포를 쏘아대는 포격전만 되풀이할뿐 조우전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휴전이 되면 그만이다. 도장을 찍기전에 개울하나 고지하나라도 더회복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 우리는 활발한 탐색전을 벌었으나 적은 호속에 깊이들어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는사이에 27일을맞았다.
아침8시쯤 됐을때 보통때처럼 포탄이 작열하는가운데 각 소대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통신병이 「급보」라고 나를 찾았다.
수하기를 드니 대대장이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중대에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하고 새로운 지시를 기다렸더니 대대장은 무거운 말투로 『오늘아침10시 휴전이 성립됐다. 따라서 22시를 기해 모든 전투행위를 중지한다. 그러나 각중대는 현진지에서 계속 경계임무에 만전을 다하라』고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하는것이아닌가-.
수화기를 든체 나는 『끝내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몸에서 기운이 쑥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통일의 날도 기약할수없고젊은 목숨을 바친 용사들의죽음도 그 보람을 찾을길이없게 됐구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갔다.
소대장들을 불러 소식을 전하고 2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되자 이웃에 포진한 미군부대에서「서치라이트」가 밤을 대낮같이 밝히는 가운데 이제껏 콩볶듯 쏘아대던 기관총이며 대포의 포성이 뚝그치고 그뒤로는 아무일도 없었던듯 강산은 고요속에 묻혔다.
적진을 바라보니 깊이 숨어있던 적병들이 기어나와 이리뛰고 저리왔다 하는것이「서치라이트」 속에 손에 잡힐듯보였다. 적을보고도 총도쏘지못하다니-. 이것이 휴전인가-허탈감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잠시후 소대장들이 달려왔다. 「벙커」 에 들어선 소대장들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155고지는 순식간에 분통을 터뜨린 장병의 울음바다가 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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