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8년의 세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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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때 우리는 동숭동에 살았다.「아카시아」가 꽂을 한창 피울때여서 마당과 방에 향기로운 내음이 가득찼었다. 벌이 유난히 큰소리로 왕왕거리며 가지사이를 내왕하면 아직 어린우리 아이들은 손뼉을 짝짝 쳐가며 좋아들 했다.
6·25사태가 터지던날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전국고등학교 야구시합구경을가고 그는 아이들과 벌이 유난히 큰소리로 왕왕거리는 마당에서 꽃을 가꾸느라고 흙을 만졌다던가. 그가 잡혀가던 날은 해가쨍쨍 내리 쬐었던것같다. 나와 그는 정치보위부에 가야할 시간에 거리를 자꾸 걸었다.
청진동골목에서 인사동으로, 인사동골목에서 낙원동으로 이렇게 몇번씩되돌고 또걸었다. 그무렵에 필수있는 꽃들이 빈집마당에 많이들 피어 있었다.
6·25사태가 터진지도 이제 18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리던 우리아이들은 자라서 하나는 며칠전에 시집을 갔다. 또 얼마의 세월이 더 지나가면 남은 하나마저 시집을 가게될것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가면서 차차 아빠를 잊어가고 있다.
작은것은 철이없어서 모르고지났지만 큰것은 아빠의 모자를 보고도, 아빠의 옷을 보고도 울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아이들뿐아니라 그는 많은사람들 뇌리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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