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6자회담, 군축회담 돼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북한 외무성은 31일 "우리가 당당한 핵무기 보유국이 된 지금에 와서 6자회담은 마땅히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으로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영 중앙통신에 따르면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이제는 6자회담에서 '(북핵)동결과 보상'같은 주고받기식의 문제를 논할 시기는 지나갔다"며 "실제적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공정하게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 방도를 논하는 장소로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위협이 완전히 청산되면 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도 담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관련, "우리로 하여금 핵무기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근원인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가중되는 미국의 핵위협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남조선에서 미국의 모든 핵무기들을 철거시키고 남조선 자체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는 검증을 통해 확인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북한 발표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채널 등을 가동해 북측 의도 분석과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영종 기자

[뉴스분석] 핵무기 보유 기정사실화
상응한 대우 요구 의도
핵포기 외부 공세 물타기

북한 외무성의 31일 담화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6자회담에 대한 전략의 변화다. 회담 성격을 변화시켜 회담 불참에 대한 비난을 희석하고 또 재개될 경우 유리하게 끌겠다는 것이다. 군축회담은 6자회담의 틀을 '북한의 핵 개발 저지'에서 '핵무기 감축 협상'으로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회담이 북한 핵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부담스러운 국면을 벗어나 '한반도와 주변의 모든 핵'으로 물타기 하려는 의제 회피 전술이다. 회담 성격 전환 과정에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핵 국가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지난달 10일 핵무기 보유 선언이 '말'에만 그친 것과 달리 이번에 '군축회담'이란 구체적 구상을 제시한 것은 치밀하게 계산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담화가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 것은 작전의 변화가 "6자회담을 망친다"는 비난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는 전술이다. 지난번 핵 보유 선언 때와 달리 이번 A4 용지 4쪽 분량의 담화는 "비핵화 실현이 우리의 시종일관한 전략 목표"라고 시작하면서 "비핵화 실현을 위해 자기 할 바를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맺고 있다. 이런 점을 근거로 통일연구원 정영태 연구위원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겠다는 메시지로도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새 전략엔 한.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와 주장이 깔려 있다. 한.미 측에 '있지도 않은 한반도 핵'의 철거를 요구하고 "검증을 통해 (철거를) 확인해야 한다"고 한 것은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에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선(先) 핵 포기'는 어렵다고 버티는 대목은 기본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