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편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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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종간의 알력은 드디어「멕시코·올림픽」대회에까지 불이 붙었다.
이것은 작은사건이 아니다.
이인종분규는 전인류를 멸망시킬 불씨를 품고있는 것이다.
내일에 살 전인류의 존망을 판가름할 이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의 본거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편견이다.
흑인과 백인간의 알력도 따지고보면 편견에서 생기는 것이다.
가정불화, 정당간의대립, 종파간 혹은「이데올로기」의 분규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편견에서 생긴다.
편견은 오해와 과장을 빚어내고 그것은 증오와 보복의 악의 순환을 확대시킨다.
편견은 미워하는 사이에서만 비극의 씨가 되는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이에도 비극을 초래 시킨다.
편견에서 생겨진 사랑이나 존경은 결국 비극을 초래한다.
남녀간의 실연, 비련(비련), 친구간의 배반등은 한쪽 편견에서 출발되어 정반대의 편견으로 변한데서 생긴다.
지도자에 대한 지나친 존경은 우상화에서 독재자로 만들어 간다.
위대한 사람이란 곧 이 편견에서 해방된 사람이고 이 편견에서 인간을 해방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예수도, 석가여래도, 얼마전 살해된「마틴·루터·킹」박사도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편견에서 해방된 사람도 결국은 비극적인 인물이다.
편견에서 해방된 사람은 편견을 가지고 대립된 양쪽에서 다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루터·킹」은 아직도 정체불명의 백인의 손에 죽었으나 사실은 백인과 흑인의 공모로 죽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인류의 비극을 해결하는 비극이라는데 가치가있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 넣을 불씨를 가진 인종분규도「루터·킹」이 부루 짖는 서로 함께 거두는 자유와 정의의 승리 이외에 어느 한쪽만의 승리란 있을 수 없다.
내일에 살기 위해 싸울 공동의 적은 바로 이 편견이고 서로 맑은 눈으로 마주 보고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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