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2235억원 김정일 개인 주머니로 들어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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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가정보원 주도로 북한에 송금된 2천2백35억원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개인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단서가 나왔다. 이 돈이 북한으로 가기 전 金위원장 측근인 마카오의 박자병(朴紫炳.북한 조광무역공사 총지배인)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朴은 1990년 초부터 북한의 동남아시아 거점인 마카오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金위원장 비자금을 조성.관리해온 인물이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북한의 돈세탁 거점인 마카오를 朴에게 10년 이상 맡긴다는 것은 金위원장의 신임이 상당하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朴이 이곳 중국은행 지점에 개설한 계좌에 현대상선의 돈이 들어갔다면 그 돈은 결국 金위원장 개인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현대상선이 감사원에 제출한 자료의 설명대로 2천2백35억원이 7대 대북 경협사업에 쓰였다면 국정원이 대북 송금을 주도할 이유가 없고, 더구나 金위원장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박자병의 계좌에 돈이 들어갈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돈의 성격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4일 "현대가 개성공단 등 7개 사업을 북측으로부터 30년간 보장받는 계약을 했고, 정부는 북한에 돈을 주지 않았다"며 2천2백35억원을 현대의 경협사업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돈이 국정원 주도로 朴의 계좌에 입금된 이상 정상회담 뒷거래용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金대통령 방북을 24시간 앞둔 시점인 2000년 6월 11일 북한이 일정을 갑자기 하루 연기했고, 그런 시점에 국정원이 나서서 朴의 계좌에 거액을 보냈다는 것은 짙은 의혹을 낳게 한다.

금융감독원이 현대상선 대출금에 대한 계좌추적을 끝까지 거부하고, 朴실장이 계좌추적에 반대한 이유도 보다 분명해진다. 돈의 비정상적 송금 경로와 입금처가 드러나면, 대북 뒷거래 의혹은 증폭될 것이므로 현 정권으로선 필사적으로 계좌추적을 막았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국정원 측은 외환은행을 통해 2천2백35억원을 송금한 직후 박자병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했다고 한다. 朴이 입금 사실을 확인하고 평양에 보고한 시간까지 체크할 정도였다는 게 정치권 고위 관계자의 얘기다. 당시 국정원이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웠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별취재팀 김시래.이상일.이정재.고정애.박신홍 기자<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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