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마카오에 송금한 2235억원 김정일 자금관리인 계좌 입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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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하루 앞둔 2000년 6월 12일 국가정보원이 홍콩을 거쳐 마카오에 송금한 현대상선 대출금 2천2백35억원(약 2억달러)은 마카오의 북한 조광무역공사 총지배인 박자병(朴紫炳) 명의의 중국은행 계좌에 입금된 뒤 북한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자병은 동남아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외환은행 본점을 통해 송금한 돈은 결국 金위원장 개인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대북(對北) 송금 경로에 정통한 정치권 고위 관계자는 5일 "2천2백35억원이 북한에 전달되기 전 마카오의 박자병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정보.금융당국은 파악하고 있다"면서 "朴은 6월 12일 입금사실을 확인한 뒤 당일 오후 6시쯤 평양에 전화해 金위원장에게 보고했으며, 국정원은 이 사실을 즉각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朴은 외교관 신분을 가진 차관급 인사로 1990년 초부터 마카오에서 金위원장의 비자금 관리임무를 맡아왔다"면서 "북한으로 간 돈의 행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로 金위원장 개인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2천2백35억원은 현대의 7대 대북 경협사업 용도가 아닌 남북 정상회담 대가 등 뒷거래용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은 2000년 金대통령의 방북을 앞두고 그해 6월 12~14일로 잡힌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기술적인 준비관계'를 이유로 갑자기 하루 연기하자고 정부측에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북한이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은 현 정권이 약속한 돈을 예정된 일정에 맞춰 북한에 모두 송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편 국정원 측은 대북 송금문제와 관련,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확인 또는 부인하지 않는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시래.이상일.이정재.고정애.박신홍 기자<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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