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 봐도 통하는 세 남자의 하모니 순도 100% 즉흥 연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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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24면

즉흥 재즈 피아노의 정점이라 추앙되는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트리오 스탠더드(Standard)가 다시 국내 재즈 팬들과의 교감을 앞두고 있다. 2010년 10월 6일 첫 내한공연에서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오늘 5월 19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예정된 이들의 두 번째 무대는 “스탠더드를 통한 보다 자유로운 즉흥”을 표방한 키스 자렛 트리오 스탠더드의 결성 30주년 무대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재즈 뮤지션 키스 자렛의 트리오 스탠더드, 19일 세종문화회관

잭 디조넷(Jack Dejohnetteㆍ드럼), 게리 피콕(Gary Peacockㆍ베이스)과 조우하며 1983년 결성된 키스 자렛 트리오 스탠더드는 음악 애호가들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친숙한 스탠더드를 주요 레퍼토리로 삼아 연주해왔다. 다만 이들의 연주는 기성 피아노 트리오의 답습이 아닌 보다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교감을 통한 “즉흥의 확장”이란 점이 남다르다. 피아노ㆍ베이스ㆍ드럼이 흡사 대화를 나누듯 서로의 연주를 주고받으며 한 폭의 연주를 그려가는 방식을 뜻하는 용어인 ‘인터플레이(Interplay)’는 과거 60년대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Bill Evans)가 제시했던 피아노 트리오 연주의 전형이다.

키스 자렛은 과거 빌 에번스 식의 인터플레이를 받아들이되, 멤버들과의 교감을 더욱 세련되고 과감한 방식으로 발전시키며 정체되지 않는 즉흥의 세계를 펼쳐냈다는 점에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생소한 창작곡이 아닌 ‘Over the rainbow’, ‘When I fall in love’, ‘God bless the child’ 등 재즈 팬들에게 이젠 상식으로 여겨지는 멜로디를 레퍼토리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또 스탠더드를 통한 자신들의 독창적인 교감에 그치지 않고 청중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피아노 솔로 즉흥 명연으로 기록된 ‘The Köln concert’(1975)와 국내에 키스 자렛의 존재를 널리 알린 사랑스러운 소품 ‘My song’으로 알려진 키스 자렛. 1983년 1월,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동료를 초청해 녹음을 시도했고, 그 결과 애초 한시적으로 활동하려던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84년, 85년 연이어 발표되며 키스 자렛 트리오 스탠더드의 위대한 탄생을 알린 석 장의 앨범 ‘Changes’, ‘Standard Vol.1’, ‘Standard Vol.2’는 세계적인 리더급 재즈 뮤지션의 만남이란 의미를 넘어서 재즈 연주 중 가장 대중적인 포맷이라 할 피아노 트리오의 신기원이었다.

스탠더드를 소재로 블루스ㆍ펑키ㆍ가스펠ㆍ비밥ㆍ프리 등 재즈의 다양한 스타일이 콜라주처럼 응집된 이들의 연주는 지금까지도 특정 스타일로 분류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즉흥 연주로 정의된다.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그려가는 방식 또한 연주만큼이나 대담하다. 3인방은 연주에 앞서 어떤 곡을 연주하고 누가 먼저 솔로를 시작할지만 정할 뿐이다. 이제 남은 건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3인방의 절대적인 신뢰가 빚어낸 순도 100%의 즉흥만으로 진행되는 연주다. 우리가 기억했던 ‘Over the rainbow’가 아닌, 키스 자렛 트리오의 연주로 환골탈태된, 전혀 새로운 ‘Over the rainbow’를 청중들은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키스 자렛 트리오 스탠더드의 이 옹골찬 인터플레이는 “재즈는 어떤 곡을 연주하느냐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연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라는 재즈의 영원불변하는 미덕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사실 스탠더드라는 용어가 갖는 대중성 혹은 친숙함은 때론 구태의연함과 촌스러움이란 부정적 의미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키스 자렛의 스탠더드는 여전히 현대 톱 클래스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유의미함을 증명한다. 트리오 스탠더드가 청중과 소통하는 방법론의 하나가 스탠더드라면, 그들을 예의주시하는 뮤지션들에게 스탠더드란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창작 영감의 원천인 셈이다. 지금껏 이들이 ECM 레이블에서 남긴 20여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라이브 앨범이 ‘스탠더드’란 타이틀을 표방했지만 어느 것 하나 진부하다는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스탠더드란 전통의 친숙함을 빌려, 정체되지 않는 스타일리스트들의 호흡을 녹여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매력. 우리 시대 최고의 인터플레이, 키스 자렛 트리오 스탠더드의 매력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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