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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갖고 태어나는 달팽이가 부럽다는 민달팽이 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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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내 집 마련’이 대한민국 고유명사가 된 지는 꽤 됐다. 1960년대 불어닥친 개발 붐이 시작이었다. 70년대엔 도시 빈민이 급증했는데, 특히 서울이 심했다. 집 없는 설움을 톡톡히 맛본 서울 서민의 염원 1순위가 ‘내 집 마련’이었다. 당시 상황을 77년 한 신문은 사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남의 집 문간방에서 집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우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 어미의 눈에는 한 맺힌 이슬이 핀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서민의 첫째 소원은 제 땅에 제 집 짓고 사는 것이다’.

 80년대 들어서자 ‘내 집 마련’은 국민적 명제가 됐다. 1980년엔 서울 시민 44.5%만 자기 집에서 살았다. 언론은 ‘멀어져 가는 내 집 마련 꿈’을 단골메뉴로 다뤘다. 88서울올림픽 이후엔 상황이 극으로 치달았다. 90년까지 이어진 사상 최악의 전세난과 집값 폭등으로 목숨을 끊는 서민 가장이 속출했다. 당시 신문사 경찰출입 기자들은 자고 나면 두 가지를 챙기느라 노심초사해야 했다. ‘오르는 집값’과 ‘전셋값 폭등 비관 자살’이었다.

 1990년 3월 22일. 중앙일보 1면에 실린 큼직한 기획기사도 그런 비극적 현실을 그린 것이었다. 제목은 ‘엄마 또 이사가? 쫓겨 다니는 내 집 꿈’. 3평에 300만원 하던 전셋값이 450만원으로 오르자 비관 자살한 50대 가장 이모씨 죽음이 계기였다. 이렇게 목숨을 끊은 이들이 그해 두 달 동안 17명. 그 참담함을 짐작할 만하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제일 부러워하는 동물은 달팽이”란 풍자가 유행했을까. 달팽이는 날 때부터 자기 집을 갖고 태어난다는 이유였다.

 ‘내 집 마련’은 2007년까지도 국민 염원 1순위 자리를 지켰다. 웬만한 인기 재테크 책엔 ‘내 집 마련 비법’이 빠지지 않았다. ‘20대부터 시작하라, 30이면 늦으리’ ‘남들은 모르는 내 집 마련 노하우 10가지’ 등. 하지만 이듬해인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집값이 떨어지자 ‘내 집 마련’의 위상에도 마침내 변화가 생겼다.

 2013년 5월.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주거실태조사를 해보니 “내 집 마련 안 해도 된다”는 국민이 27%, 2년 전보다 11%포인트나 늘었다고 엊그제 밝혔다. 내 집을 처음 장만하는 평균 나이도 불혹(40.9세)까지 올라갔다. 고령화로 결혼 연령이 늦어진 게 첫째 이유요, 경제가 나빠지면서 집값 상승 신화가 끝났다는 게 두 번째다. 50여 년 요지부동이던 ‘내 집 마련’ 꿈의 쇠락, 고령화와 경기 침체가 낳은 또 다른 풍경이다.

 달라진 건 또 있다. 달팽이에 대한 부러움이다. 요즘엔 이런 풍자가 유행 중이란다. “이 시대 대한민국 청년과 가장 닮은 동물은 민달팽이다. 왜냐고? 날 때부터 평생 집 없이 살아야 하니까.”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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