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 육성테이프 4] "당신은 2인자 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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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또한 대통령에 당선되시고 나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만난 인사였습니다. 대통령(당선자)의 친서를 들고 소로스의 휴가처로 달려가서 그를 모셔왔습니다. 그가 1월 3일 방한하기 전에 하루 먼저 귀국해서 대통령으로서의 첫 휴가를 쉐라톤 워커힐에서 보내고 있던 DJ를 만났습니다.

나중에 청와대 부속실장을 했던 김득회씨가 불이 나게 전화를 해도 나와 연락이 잘 안 되자 대통령이 직접 나를 찾았습니다. 그때 제가 핸드폰이 잘 안 되는 지역에 있어서 그랬다고 했더니, 대통령(당선자)은 통화가 되자마자 대뜸 화를 내시면서 “이 사람아, 자네 찾느라고 우리가 난리가 났어. 내가 휴가중인데도 자네 목소리 들어보려고 이렇게 휴가를 보내고 있네. 빨리 오게.” 그래서 바로 쉐라톤 워커힐 VIP맨션으로 갔습니다.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자 응접실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김종기씨, 김종성씨, 또 현재 비서관으로 있는 방 아무개 등 몇몇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2인자입니다. 대통령께서 휴가 보내시는데 서로 오겠다고 난리인데 다 미루고 최규선이 어디 있냐고 찾고 있습니다. 정권의 2인자 최규선 잘 부탁합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나는 거실 오른쪽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 대통령(당선자)께서는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신이 없어서 세배를 못드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께서 나에게 주려고 세뱃돈을 준비했었다고 합니다(몹시 후회스러운 음성이었다).

“오소, 오소, 오소.” 대통령(당선자)은 저를 왼쪽으로 안내했습니다. “자네가 나라를 살리네, 소로스 들어오지?” “네 당선자님. 내일 들어옵니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됐어. 사람들은 소로스 보고 투기꾼이니 어쩌니 그래요. 모르는 소리, 소로스가 어때서. 세계적인 투자자고 철학자예요. 자네 ‘오픈 소사이어티’(소로스 재단 소속) 알지?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지 전쟁과 테러가 없어진다는 간단한 철학을 가지고 소로스가 매년 몇조원씩 복지에 돈을 쓰고 있는 단체야. 그는 세계적인 철학자네.” 그렇게 소로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시장이 세계에 알려져야 하네. 소로스도 한국에 투자한다는 게 알려져야지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몰리네. 자네가 12월에 대우에 MOU(투자양해각서)를 맺게 해준 알 왈리드도 억만장자 맞지? 내가 편지 보고 알았어. 자네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아는가. 자네는 나보다 더 훌륭하네”라며 말할 수 없는 격찬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장옥추씨가 피자를 가져왔습니다. “자네 피자 좋아하지. 나도 피자 맛있어.”그러면서 음료수와 피자를 먹으면서 얘기했습니다.

“이제 자네는 서열이 틀려졌네. 그리고 권력 내 위치가 틀려져부려. 이럴 때일수록 자네는 내 밑에서 커야 하네.”

“아이고,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대통령님.”(그는 청와대 비서실 상황실장으로 내정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IMF만 극복하면 역사에 남네. 그리고 남북관계 풀어가지고 그렇게 우리 국민이 숙원하는 노벨평화상도 받을 거야. 그때도 자네가 역할을 해줘. 자네 처음에 쓸 때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만류했는가 몰라. 검증이 확실히 됐습니까, 좀 이상한 놈이라고 합니다, 사기꾼 아닐까요. 그러나 다 뿌리치고 내가 사람볼 줄 알아 쓴다고 했더니, 자네가 나 대통령 당선될 때 그 위기 위기마다 다 벗어나게 해주고, 이제 IMF 극복하는 대통령까지 자네가 만들어주고 있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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