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인도 요청 땐 워싱턴서 재판 … 외교적 고려가 변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한인교포 성추행 및 급거 귀국 사건은 한·미 양국 간 국제사법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성추행(성폭행)에 대한 양국 간 법 제도가 다른 상황에서 정확한 범죄 사실 파악을 위한 수사기관의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일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경찰은 재미교포 인턴 A씨(23)로부터 “윤 전 대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윤 전 대변인은 호텔에 머물라는 경찰의 지시를 어기고 혼자 국내로 입국했다는 것이다. 미국 경찰이 윤 전 대변인을 조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한국 경찰에 조사를 위탁하는 방법 ▶직접 한국을 방문해 조사하는 방법 ▶미국 사법부를 거쳐 윤 전 대변인의 신병 인도를 요청하는 방법이다.

 위탁 조사나 직접 방문 조사는 전례가 드물고 수사의 효율성 면에서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신병 인도 요청 방식이 유력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한·미 양국 간 체결돼 있는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서다. 하지만 인도 요청에 대해 부정적 기류도 적지 않다. 우선 윤 전 대변인이 저지른 범죄가 1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느냐는 문제가 지적된다. 미국 워싱턴DC 경찰 측의 보고서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은 ‘성추행(Misdemeanor Sexual Abuse)’ 혐의로 입건됐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로펌의 한 미국 변호사는 “‘미스디미너’는 경범죄를 가리키는 말로 1000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6개월 구류형에 해당돼 범죄인 인도 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과거 BBK 사건의 김경준씨 때처럼 범죄인 인도가 4~5개월 이상 걸리는 장기 과제란 점과 한국과의 우호 관계 등을 고려해 미국이 외교적 판단에 따라 인도 요청을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비해 성범죄를 훨씬 중범죄로 다룬다. 따라서 초기 보고서상의 ‘미스디미너’라 표기한 부분이 수사 과정에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DC는 주가 아니라서 주법이 아니라 연방법의 적용을 받는다. 연방법은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합의해도 접수된 사건은 끝까지 조사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윤 전 대변인이 자진 출국해 미국 경찰의 조사 요구에 응하는 경우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선 “윤 전 대변인이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한 만큼 자진 출국해 조사에 응해야 한다. 스스로 결단을 내리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 사법 당국이 윤 전 대변인을 조사하려면 피해자의 고소장이 필요하다. 국내에선 성추행이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고소가 있어야 성립되는 죄)라서다. 대한변협 대변인인 최진녕 변호사는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윤 전 대변인은 성폭력특별법상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또는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소가 없다면 한국 사법 당국이 윤 전 대변인을 조사할 방법이 없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범죄사실이 명확하지 않고 미국 측에서 어떤 요구도 없어 법무부가 입장을 내놓을 게 없다”며 “결국 중요한 건 미국 정부나 경찰의 수사 의지이며 이에 따라 상황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이가영·박민제 기자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조약에 따라 양국은 자국 영토에서 1년 이상의 금고 또는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르고 상대국으로 도주한 자국민 또는 상대 국민에 대해 인도를 요청할 수 있다.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외교부를 거쳐 법무부에 한다. 법무부는 서울고검의 심사를 거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에 인도 재판을 청구하게 된다. 법원의 재판 결과에 따라 인도 여부가 결정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