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박근혜 대통령 방미가 남긴 숙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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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인 데다 한반도의 긴장 수위가 높아진 상황에서 동맹국인 미국을 찾는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방미는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한·미 동맹 60주년의 상징성도 의미를 더했다. 4박6일의 방미를 통해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우아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기품 있는 자태와 당당한 언행으로 국가의 위신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정상외교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성과 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은 인상적이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핵의 평화적 이용과 연결시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촉구한 대목은 설득력이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대한 전문직 비자 쿼터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도 좋았다. 관련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이란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도 적절했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해나가고, 점진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평화와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미 동맹의 비전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동북아와 지구촌의 평화와 번영으로까지 확장한 것은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미국의 원조를 받던 최빈국이 60년 만에 국제사회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6차례의 기립박수를 포함해 40여 차례의 박수를 받았다. 그것은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박수라기보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박수라는 점을 박 대통령은 잊지 말아야 한다. 박수에 취해 현실을 착각하거나 당면한 책무를 망각해선 안 된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도 우리 국민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 잠정폐쇄로 북한 땅에는 단 한 명의 우리 국민도 남아 있지 않다. 당장 개성공단 문제부터 어떻게 풀고,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 어떻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시동을 걸지 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구체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곧 있을 중국 방문에서 북한 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어떤 얘기를 나눌지도 고민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나아가 평화통일의 기반 구축을 위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구체적 액션플랜도 준비해야 한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숙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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