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목욕값 영수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침부터 책상과 씨름을 하다가 어깨가.무겁고 조름이 오기에「타월」에 비누를 싸들고 일어섰다.
어느 신문에선가 「협정요금 멋대로 올려, 28개업소에 영업정지」란 제목으로 목욕탕,다방·이발소등의 이름까지 나열한 것을 보았기때문에 40원외에 1백원짜리를 따로 쥐고 집을 나섰다.
나는 목욕탕에 들어서면서 『목욕값 40원으로 되내렸다죠』하며 돈을내놓았다.『아뇨, 60원입니다 』
70세는 거진 되어 보이는 탕지기 노파의 대답이었다.『좋습니다. 그러면 60원을 낼테니 60원을 받았다는 영수증이나 써주시오.』
『우린 이때까지 목욕값 영수증을 써 준 일이 없는데요. 』노파의 말은 옳았다.목욕값에 일일이 영수증을 써 줄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짓궂게 다구쳤다.『나만 한장 써 주시오.』
『나는 글을 몰라요.』
『그러면 종업원 아무나 쓰면 되잖아요.』
『그까짓 녀석들도 마찬가지죠. 그양반 참 까다롭게 구시네.』
노파는 마침내 핀잔을 터뜨렸다.
『그러면 내가 써드릴테니 도장이나 찍어 주시오』라고 되받아 넘겼다.
노파의 대답이 걸작이다.
『목욕값은 40원이지만 머리 감는 세발료가 20원 더 붙어요.』.
『그러면 난, 머리는 감지 않겠소.』『내 참, 그러세요.』
내가 우스꽝스러운 문답을 끝내고 처음 내놓은 40원을 밀어 놓은채 탈의장으로 들어서자 젊은종업원이 다가서며
『할아버지도. 그냥 40원밖에 안 갖고 오셨다면 될걸 공연히 다른 손님한테서도 못받게 하십니다』 며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렇든 나는 할머니와의「협정」을 무시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목욕을 끝내고 나섰다.
할머니는 내머리를 보고 입을 삐쭉했다.
협정요금 문제를 둘러싼 행정당국과 업자간의 씨름이 어떻게 끝날지 장차 두고 볼 문제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