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휘슬에 난장판된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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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휘슬범(犯)'을 찾아라. "

3일자 홍콩 일간지 스포츠면 머리기사의 제목이다. 마치 국가의 명예를 훼손한 중범죄자라도 수색하는 듯한 분위기다. 홍콩축구협회도 "그런 멍청이를 그냥 둘 수 없다"며 잔뜩 독오른 표정이다.

사단은 지난 2일 진행된 홍콩 칼스버그컵 축구대회 이란-덴마크의 경기에서 벌어졌다. 전반전 종료시간이 임박한 시각, 갑자기 관중석에서 '삑-'하는 호각소리가 울렸다.

이때 페널티 지역에 서 있던 이란 수비수 알리레자 베예디닉바흐트는 얼른 공을 집어 심판에게 건넸다. 관중의 호각을 심판의 전반전 종료 휘슬로 착각한 것이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공을 쳐다보던 심판은 즉각 덴마크의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자 관중석이 발칵 뒤집혔다. 이란측 응원단은 폭동이라도 일으킬 듯한 기세로 야유를 보냈고 이란 선수들도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나 심판은 요지부동. 경기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키커로 나선 덴마크팀의 주장 모르텐 비고르스트는 일부러 공을 멀리 벗어나게 차버렸다.

2만여 관중은 덴마크팀의 신사적인 결정에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로 화답했지만 결국 덴마크는 후반 실점으로 이란에 0-1로 패하고 말았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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