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본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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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에의 유학이 이젠 공식적으로 허락되리라 한다. 그리고 일본어 강습소도 공인을 받게될 모양이다. 일본에의 유학을 막을 이유도 없고 일어강습을 받아서 나쁠 리 없는 것이겠지만, 막상 그것이 공식적으로 허용된다니까 어쩐지 일종의 서글픔이 느껴진다.
우린 일본인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 편견은 우리가 일본에 36년간 짓밟혔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일본인이 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멸시와 모멸의 댓가라고 볼만하다. 이 편견 때문에 우리는 줄곧 일본을 증오해왔고 또 경계해왔다.
한·일 회담을 그토록 반대해 본 것도 이런 편견이 개입한 바 컸으리라 짐작된다. 한·일수교협정이 체결되고 일본대사관이 우리 땅에 버젓이 개점하고 있는 이 마당에, 또다시 일본을 배척해야 한다고 부질없는 만용을 내뿜기 싫으나 그렇다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완전히 묵살하는 어리석음은 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유학이 편견을 해빙하고 일본문화에의 동조를 가져올 방향으론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편견이 있다는 것은 우리와 일본과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편견이 강하면 그만큼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려면 편견은 부득불 필요해진다. 물론 편견은 비논리적 사고이고 감정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칫하면 편견은 편협한 국수주의를 가져올 함정은 있다.
그러나 편견은 내집단의식을 강화하고 우리감정을 앙양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수주의적 편견이 아니라 주체성 확보를 위한 편견은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특히 우리 나라는 일본의 무자비한 문화정책 때문에 사고가 왜색화하여 버렸고 문화적으로 곧 친근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감정적이 아니라 정책적인 편견 유지는 있어 마땅한 것이다.
일본유학은 다른 나라에의 유학보다는 신중해야 한다. 거리를 휩쓰는 일어강습의 간판도 겸손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에 관제되는 것만큼은, 합리적인 별도의 통제기구가 구성되어 계획적으로 처리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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