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우린 아버지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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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논설위원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이들 노래 가락에 가장들은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폭탄주를 마시고, 영혼을 판다. 승진에서 누락돼도,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말도 안 되는 상사의 질책에 속이 뒤틀려도, 밥벌이가 비루하게 느껴질 때도 버텨내는 건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니까’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다.

 대학 졸업 후 10년 넘게 한 회사를 다녔던 A. 그가 직장을 옮기고 며칠 후였다. 퇴근 무렵 옛 직장 동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영혼을 파니까 좋아요?” 기습 질문에 숨이 막혔다. 이직을 했다고 영혼을 판 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는 것도 아닌데…. 한마디 대꾸라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 안에서 맴돈다. 그래. 내게 영혼이란 건 없어. 구깃구깃 접힌 마음을 한잔 술로 속인 뒤 아파트 현관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올린다. 왜? 아이에게 밝은 얼굴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아버지니까.

 공기업 간부 B. 그는 요즘 회사 일이 아닌 가욋일로 정신이 없다. 정부가 바뀌었으니 CEO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만둘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내게 미운 털이 박힌 것처럼 구는 CEO가 물러나지 않으면 이 자리도 위태롭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종이 한 장에 CEO와 관련된 의혹들을 정리했다. 그 비망록을 힘 있는 기관들에 돌리고 있다. 처음엔 왜 이리도 인간관계가 좁을까, 좌절도 했지만 다리 하나 건너니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지만 머리를 내젓는다. 아버지니까.

 중견기업 임원 C. “왜 자꾸 담배 냄새가 나죠?” 전무가 회의 도중 신경질을 내며 고개를 돌린다. 점심 식사 하고 담배를 피운 뒤 양치질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죄 지은 듯 머리를 숙이고 있다. 나이도 엇비슷한 전무에게 곤욕을 치르고 나면 뒤통수가 따갑다. 측은한 듯 쳐다보는 부하 직원들의 눈초리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사표를 던지고 싶다. 그래도 이 순간을 넘겨야 한다. 아버지니까.

 신문사 논설위원을 지낸 송동선씨. 그는 명예퇴직과 이혼, 둘째 아들의 죽음을 겪고도 두 아들을 위해 일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방문판매, 하수관 매설, 고기잡이배…. 그는 자전적 에세이 『아버지니까』에서 이렇게 말한다.

 “먹고살기 위해 신새벽,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노가다 현장으로 가면서 이 세상 아버지들의 진면목을 보았다.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눈썹을 휘날리며 꼭두새벽부터 일터로 달려가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제과회사 회장에게 장지갑으로 뺨을 맞고도 침묵해야 했던 호텔 현관 지배인도, 30대 영업사원에게 폭언을 들어야 했던 50대 대리점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아버지니까’ 하나 때문에 이를 악물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협잡을 하고,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도 “싫은 일도 돈이 되면 하는 것이 아버지”다.

 지금 우리는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흘린 땀과 눈물 위에 있다. 이제 ‘아버지니까’도 한 단계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아버지들에겐 또 어떤 절박함이 있는지 이해해보려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누리는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뒷돈과 술과 성(性)의 유혹을 뿌리치고, 불법과 탈법을 요구하는 지시에 마주 설 수 있다면 아이들은 좀 더 환한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그 힘은 “나는 아버지니까”보다 “우린 아버지니까”에서 나온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하루의 피곤을 씻고 ‘행복한 왕자’가 되고 마는 모든 동료 아버지들께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고객님, 사장님, 회장님, 원장님, 장관님들께 한 가지 부탁 드리고 싶다. ‘아버지니까’의 신성함과 간절함을 함부로 짓밟거나 악용하지 말기를.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