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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아이디어 없어도 융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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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홍대순
ADL코리아 부회장

요즘 창조경제의 개념과 정의는 대한민국에서 회자되는 핵심 단어임에 틀림없다. 국회를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 정부 및 장관에게 창조경제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 및 정의에 대한 토론을 진지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창조경제란 이것이다’고 정의하는 것 중에서 틀린 것이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창조경제에 대해 틀리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소 깊이와 폭, 사용하는 단어가 상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시하는 사례가 아주 사소할 수도 있지만 틀리게 정의해 왜곡하는 내용은 없는 것 같다.

 필자 생각에는 이미 창조경제의 개념과 정의에 대한 논쟁은 충분히 다뤄진 것 같다. 오히려 창조경제의 실천이 훨씬 더 중요한데 ‘개념에 대한 논쟁만 난무하다가 온통 진이 다 빠져버리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창조경제의 개념이나 정의에 대해서는 그만 물어보고, 그만 대답했으면 한다. 더불어 말 트집 잡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하고 바란다. 오히려 그 실천방안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범국가 차원에서 이뤄졌으면 한다.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가다듬어지면서 그 의미와 가치가 분명하게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경제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자율과 창의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과거 산업경제사회에서의 노동·자본·생산성 및 효율성 개념과는 다소 배치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창조경제에서는 노동·자본보다는 창의적 인적자원이, 생산성·효율성(Efficiency)보다는 효과성(Effectiveness)이 훨씬 중요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예술작품을 논할 때 그 작품이 주는 가치, 즉 효과성에 의미를 부여하지, 작품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렸는지 등의 관점인 생산성·효율성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과거와 달리 창조경제 기반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때는 국가 주도로 무엇을 정하려 하고, 국가가 치밀하게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뿐더러 창조경제 아래서는 국가 주도의 방식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창조경제 아래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때 국가는 지향하는 철학과 큰 방향성을 제시하면 된다. 거기에 따라 민간부문은 수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세상에 가치를 제공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국가는 민간이 제시한 아이디어와 상상 중에서 어떤 게 가장 매력적인 것인지를 판단하는 예리한 안목을 갖고, 아낌없이 지원하는 형태가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는 민간부문의 자율과 창의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자율과 창의를 규제하거나 억제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범부처 차원에서 고민해 접근해야 할 것이다. 특히 문제·이슈가 발생한 후 사후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풀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 정책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미국엔 아이디어 있는 곳에 투자가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아이디어가 없어도 융자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는 바로 자율과 창의가 살아 있는 이러한 장(場)을 만들어줘야 한다. 민간부문은 이러한 장에 기반해 마음껏 뛰놀고 끼를 발휘하면서 미래 세상을 상상하며, 그것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마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듯이 민간 부문이 신명 나게 아이디어를 내는 장을 만들어주고, 아울러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창의적 DNA가 만개할 수 있다면 분명 지구촌이 깜짝 놀랄 새로운 기적이 만들어질 수 있다.

홍 대 순 ADL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