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불똥 튈라"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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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동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방문교수로 예루살렘에 체류 중인 최창모(崔昌模.건국대 히브리학)교수가 보내온 현장 리포트를 국제면에 독점 게재합니다.

지난달 28일 실시된 이스라엘 총선에서 예상대로 아리엘 샤론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선거란 향수(香水)와 같아 냄새 맡기엔 좋지만 삼키기에는 위험하다. 그가 얻은 의석수는 총 1백20석 가운데 37석에 불과하다. 또다시 연정(聯政)이 불가피해졌다.

19석을 얻은 제1야당인 노동당은 샤론과의 연정을 거부한 바 있으며, 15석을 얻어 제3당으로 약진한 중도파의 쉬누이당 역시 아직은 관망하는 태도다.

둘 중 하나와 연합정부를 구성한다 해도 어차피 과반수를 넘길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소수 우파 정당들과의 연정이 뒤따르게 될 터인데 이는 곧 정국 불안을 의미한다.

현재 이스라엘이 앓고 있는 병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전쟁의 불똥이 튈까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미 전국민에게 방독면을 지급한 상태다.

또 연일 계속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로 버스를 타거나 쇼핑을 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다 10.4%에 달하는 실업률과 6.5%의 인플레이션, 국내총생산(GDP)의 5%나 되는 예산적자와 긴축재정 등으로 이스라엘의 경제상황은 1965년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국민이 다시 샤론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종래 이스라엘 선거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쥐락펴락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맞지 않는 말이다.

아라파트 '때문에' 샤론을 지지한 국민은 더 이상 없다. 오히려 아라파트에게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샤론을 찍었다. 샤론은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포기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새 지도부를 구성하면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요컨대 샤론에 대한 지지는 곧 팔레스타인의 개혁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중동 평화협상은 그 다음 문제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다. 적어도 지금은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걸프전 때보다 훨씬 더 강경한 미국의 태도는 이스라엘 국민으로 하여금 미국과 밀접하게 공조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음으로써 이라크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이라크가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면 즉각 군사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아주 높다. 걸프전 때와 다른 점이다.

일부 팔레스타인인들은 선거에서 샤론이 승리한 것은 이스라엘이 평화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여기서 내가 만난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우는 생각이 다르다.

너무나 긴 시간 동안 테러 위협을 당하면서 거의 집단적 불안증세를 경험하며 사는 유대인들에게 평화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빵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얻는 방법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국민이 '올바른 이상, 그릇된 방식'의 좌파를 외면하고, '그릇된 이상, 올바른 방식'의 우파를 선택한 이유다.

최창모 교수 <ccmo55@hanmail.net>

◇최창모 교수 약력=▶연세대 신학대학원 석사▶히브리대학 문학박사▶건국대 문과대 교수▶UC버클리.옥스퍼드대 교환교수▶저서:'이스라엘사''20세기 중동을 움직인 50인''고대 히브리어 연구' 등 다수

<바로잡습니다>

◇2월 4일자 14면 '최창모 교수의 예루살렘 통신' 기사 중 중도파 쉬누이당이 얻은 의석수를 15석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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