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암벽 타기에 빠져 인생 진로 바꿨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 산악조난 구조대복을 입고 있는 변봉희씨. [연합]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도 아닌데…."

1996년 창설된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산하 119특수구조대의 첫 여성 대원 변봉희(27)씨. 산악팀 소속인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현재 행정지원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나서기가 좀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빨리 구조 현장에 투입되기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면서 "좀이 쑤신다"는 말까지 했다. 변씨는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특수 구조' 또는 '산악'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다.

경북 영주가 고향인 그는 99년 7월 대구대 일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무역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만 해도 등산이라고 해야 그냥 산길을 걷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암벽 타기를 시작했다. 인터넷 등에서 '암벽 타기가 무척 재미있다'는 글을 보고서였다. 이듬해 8월 서울시 산악연맹 산하 '길 산악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을 탔다. 소질이 있었던 지 금세 전문가 수준의 실력자가 됐다. 연맹의 의뢰로 '산악 조난 구조대원'을 맡아 활약했다.

그러다 아예 진로를 바꿨다. 소방대원이 되기로 한 것이다. 공채에 합격해 지난해 1월부터 서울 동대문소방서에서 화재 진압을 했다.

"어느 날 상부에서 어떤 분이 찾아와 '특수구조대에 산악팀을 만들려 하는데 참여하겠느냐'고 묻더군요. '여성으로서 특수구조대원이 된 사람이 없어 부담스럽다'고 했더니 '당신은 등반 능력이 있으니 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좋다고 했죠. 집에선 소방 대원이 된다고 할 때도 위험한 일이라고 걱정했는데 지금은 더 걱정이시죠."

그는 지난해 말 겨울 산악인 인명구조 훈련 당시 다른 대원보다 두세 배나 빨리 암벽을 탔다. 얼마 전 체력 검정에선 전체 20명 가운데 7위에 올랐다.

"남자들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구조대원이 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최초의 여성 대원이 아니라 능력있는 대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변씨의 다부진 각오다.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