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거사 배상 기준 법제화 검토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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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신 시대의 민주화 운동 탄압과 간첩 조작 등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 판결에 따른 전체 배상액 규모가 한 해 1000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배상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등의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불행한 역사와 민주화 과정 속에서 생명과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에 대한 배상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가능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단순히 금액이 많고 적다는 식의 자세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겪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아무리 많은 액수로도 치유하기 힘든 것이다. 다만 배상액 산정에 있어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사건이 어느 재판부에 배당되느냐에 따라 배상액이 큰 차이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특히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산정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음으로써 형평성 시비까지 낳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1970년대 대학 재학 당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던 한 야당 의원의 경우 2억원이 넘는 위자료와 함께 교사수입 상실분 10억6000만원을 배상받았다. 재학 당시 교직과목을 이수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기업 회장 집을 턴 사건으로 수감되고 국회의원으로 재직했던 기간까지 넣어 수입 상실분을 계산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판사들이 과연 정확한 잣대를 갖고 배상액을 정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동의대 사건으로 순직한 경찰이나 제2연평해전 때 전사한 장병 등 다른 국가유공자들과의 형평성 여부도 따져야 할 문제다.

 국가 배상 소송은 긴급조치, 보도연맹 등으로 범위를 계속 넓혀갈 것이다. 이제라도 과거사 배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구체적인 배상 기준·절차를 법제화하는 등 대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부도 매년 관련 예산을 200억원밖에 배정하지 않은 후 뒤늦게 예비비 신청 절차를 밟는 구태에서 벗어날 때다. 사회를 위해 몸을 바친 이들에 대한 배상일수록 더욱 더 정당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