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NO' 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국가의 성장 과정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지금의 한국은 반항기의 절정에 달한 사춘기 청년처럼 보인다. 늘 부모 말에 따르지는 않는다. 말대꾸도 하고, 때로 험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말하자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이 등장한 것이다.

조지 W 부시 정권은 김대중 '햇볕'정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멀리했다. 지난해 말에도 이회창 정권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을 한국민도 감지했을 것이다.

뭐라고? 미국은 북한 정권 교체를 넘어 한국의 정권 교체까지 획책한다는 말인가. 우릴 바보 취급하지 말라.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지 미국이 아니라며 거침없이 반미(反美)로 돌아섰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 미국에 대등한 대접 요구

반미 감정의 기저에는 미군 기지 문제가 있다. 이만큼 잘 살게 됐는데도 수도 한복판에는 미군이 마치 주인인 양 50년 전과 변함없이 턱하니 자리잡고 앉아 있다.

기지 내의 미국은 한국이 가난하던 시기에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많은 한국민이 미국을 직접 보게 되면서부터는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됐다. 그런 미군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낀다. 이는 일본의 기지 문제와 통하는 데가 있다.

한꺼풀 더 벗겨보면 한국의 반미감정에는 한국이 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추국가(pivotal state)로서 발언력을 갖추기 시작했는데도 미국이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분노가 작용한 듯하다.

노무현 차기대통령이 하코시마 신이치(箱島信一) 아사히신문 사장과의 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반미가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보다 대등하게 대접받고 싶다는 심정의 표현"일 것이다.

이같은 감정은 일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케네디 정권 당시 라이샤워 주일대사가 일.미 관계를 "보다 대등한 관계로 만들자"고 제창한 이래 40년간 일.미 관계는 '보다 대등한 관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인 격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경제를 둘러싸고 반미감정이 소용돌이쳤다. 1980년대 말 일본 경제의 절정기에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공저로 출판된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그 전형이다. 한국의 경우 경제 면에서의 반미감정은 일본보다 희박하다.

한국 내에는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차별한다는 의혹과 불신이 뿌리깊다. 주둔군지위협정(SOFA)에서도 일본과 한국에 차이를 두고 있다는 불만이다.

"그렇게 일본이 소중하다면 일본과만 동맹관계를 유지하세요. 우리는 그만둘테니까"라는 식의 으름장.토라짐.투정 같은 굴절된 감정도 어딘가에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은 이런 한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두 나라는 한국의 반미감정의 이면에 켜켜이 쌓인 난해한 '민족문제'를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한.미.일 정책협조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극동지역에서의 미국의 독자적인 역할을 한.미.일 통합 형태로, 또 한반도 평화통일을 촉구하는 형태로 재정의한다 ▶기지의 규모 축소 등 미군의 병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재구성한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 후 한.미.일 3국 간에 구성된 각료급회담인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을 외무.국방장관급 회의로 격상함과 동시에 2+2회의를 한.미.일 3극체제로 재조정한다.

*** 극동지역 정책 재협의해야

어쩌면 한반도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친미 성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폴란드나 체코 사람들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미국의 향후 한반도 정책에 달려 있다.

미국과 러시아.중국.일본이 남북통일을 위한 분위기를 제대로 조성할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의 무게를 감당해내야 하는 한국의 경제력 또한 고려대상이다.

이들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남북통일이 실현됐으면 좋겠다. 과거 역사를 통해 대중(對中)관계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북한 사람들과 대미(對美)관계의 어려움을 통감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힘을 모아 성숙한 외교관계를 맺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철없던 사춘기 시절도 있었네요"라고 옛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