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캄보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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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캄보디아」 국가원수 「노로돕·시아누크」공은 지난 12일 친중공파 각료인 「차우·셍」국가 경제상과 「소넴」 보건상을 「캄보디아」에 대한 중공의 내정간섭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해임했다. 이는 「캄보디아」가 「제1우방국」이라 부르며 지난 3년간 함께 밀월을 누려온 중공에 대해 사실상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57년 영세중립을 선언한 이래 중립외교를 표방해 온 「캄보디아」는 월남정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이유로 지난 63년 미의 원조 거절에 이어 65년 대미단교를 단행, 이후 중공에 급속도로 접근해 갔다.

<한때는 형제지간>
「시아누크」공은 65년 9월 22일 국가원수로선 이례적으로 2주간이란 장기간 중공을 방문, 양국의 유대를 강화하고 「자카르타-프놈펜-북평-평양」을 잇는 이른바 반제구축을 쌓았던 것이다.
더구나 「시아누크」공은 중공방문 기간 중 「회념중국」이라는 노래를 손수 작사·작곡하여 『형제와 같은 영원한 우정』을 다짐, 중공의 호감을 사는데 광분했었다.
65년 10월 「인도네시아」가 친공 「쿠데타」의 실패로 중공노선에서 이탈하자 「자카르타∼평양」을 잇는 반제구축은 「자카르타∼북평」 중심에서 「북평∼프놈펜」 중심으로 바뀌고 이로써 「캄보디아」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졌던 것이다.

<엉큼한 중공 속셈>
하지만 「시아누크」공의 이러한 중공 일변도 외교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아누크」공은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중공이 인접국가로서의 범위를 벗어나 「캄보디아」를 적화 내지는 「핑크」색화 하려한다면 이를 단호히 거절하겠다』고 말해 「캄」국 전문가들의 추단을 어느정도 뒷받침해 주었다.

<두 친공장관 경질>
중공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지난 5월 「버마」와의 외교관계 악화로 동남아에서의 위치가 약해지자 이를 만회할 튼튼한 발판을 절감, 「캄보디아」로 하여금 중립주의의 탈을 벗고 공산주의에 발벗고 나서기를 원해왔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이며 노회한 실리주의자인 「시아누크」가 이를 거절하면서부터 「캄보디아」·중공관계는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아누크」공은 외교 교섭에 실패한 중공이 간접으로 국내에 있는 친중공 단체를 이용, 목적달성을 꾀하리라는 점을 간파, 지난 1일 대답하게도 「캄보디아」·중공우호협회 「캄보디아」지부를 해체한 것이다.
「시아누크」의 이러한 조처에 대해 중공은 즉각 반발, 「캄보디아」 정부를 『제국주의·수정주의·반동분자』라 비난하고 「캄」·중공협회 「캄보디아」 지부에 대해서 정부명령에 굴복하지 말고 계속 활동할 것으로 지령하는 전문을 발송, 경제상 「차우·셍」이 주간으로 있는 친중공계 「라·누벨·드페세」지가 이를 보도한 것이다.

<「내정간섭 말라」>
이에 「시아누크」공은 중공의 이러한 행위가 『「캄보디아」의 자율권에 대한 도전이며 정부와 국민사이를 이간시키려는 악랄한 내정간섭』이라 단정, 친중공계 각료 2명을 해임하고 관영 신문을 제외한 모든 민간신문을 외국기관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간처분한 것이다.
이 밖에 「시아누크」 공은 내년 1월이나 2월 국민투표를 실시, 국민들로 하여금 그의 정권과 친중공 분자간의 양자택일을 결정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선거 결과는 명약관화한 일. 「캄보디아」 제1의 정당인 「상쿰」당 (인민사회주의 공동체)을 이끄는 「시아누크」가 승리할 것은 틀림없는 것이며 「제2의 인도네시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코스」라 볼 수 있다. <김한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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