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바둑」3년|미국간 아들과 기보로 잇는 부자의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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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온 집안이 바둑 애호가였다. 3년 전 큰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는 떠날때 『편지나 자주 띄워라』고 했다. 아버지께 올리는 문안 편지의 너덧 차례가 어렵고 스스러웠다. 『부자의 정이 통하는 편지』는 없을까하여 큰아들이 생각해낸 것
이 편지바둑. 3년째 끌어온 제1국- 대국 자는 아버지 상대식(57·중대 학적 과장·3급) 씨와 큰아들 상박(32·뉴요크대 대학원·5급)씨. 65년10월27일 아들이 2점 붙이고 시작된 바둑은 지금 1백수째 승부의 고비에 들어섰다.
아버지 상대식씨는 8일 『1백수째 기보가 아마 미국서 지금 오는길일 것입니다. 기보가 올 때마다 그녀석의 얼굴이 선하고 여기서 데리고 앉아 바둑을 두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고 말했다.
지난 65년4월 도미한 장박씨는 10월27일 『바둑을 두고 싶을 때마다 저는 이곳 소식을 전할 수 있겠고 아버지께서도 집안 소식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면서「펜」으로 그린 바둑판에 흑2점을 놓아 보냈다. 이 바둑은 사상 최장기전일 뿐 아니라 돌 하나 놓이려면 반드시 비행기가 한차례 태평양을 건너야하고 미화 25「센트」와 한화83원(우편요금)이 들어 가장 비싸게 먹히는 바둑.
바둑 대국의 승부를 두고 아버지는 이번에 날아 올 『백번째 흑 한점이 중대한 고비』라면서 며칠째 뜸했던 아들의 소식과 함께 돌 하나를 무척도 기다리고 있다.
편지를 받기가 무섭게 곧 응수를 하고 있지만 한 점 두는데 빨라야 열흘씩 걸리니 앞으로의 승부는 피차 실수가 없는 한 몇년이 더 걸릴지 모르겠다면서 아버지는 미리 50여통의 항공엽서까지 마련해 두고있다.
(오·3)(십이·7)이런 식으로 바둑돌의 위치를 알리다보니 그동안 아들이 단 한번 착오가 있었고 아버지가 이것을 발견, 지금까지 보내온 전 위치 표와 도표로 된 바둑판을 함께 보내 확인을 해봤더니 곧 아들로부터 착오 시인의 회신이 왔을 뿐 그 외엔 단 한번의 착오조차 없었단다.
바둑 경력 40년인 상씨 집안은 온통 바둑 가족이다. 맏아들 박씨의 5급을 비롯, 5남2녀중 아들들은 모두가 5∼6급의 실력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저녁때면 부자 형제가 한데 모여 바둑 두는 것이 식구들의 취미가 되어왔다.
아버지와 큰형의 대국을 두고 집에 있는 동생들이 아버지를 훈수들 것 같지만 정반대. 아버지 편은 안 들면서 오히려 형에게 이러쿵저러쿵 의견도 보낸다고
상씨는 바둑들 위치와 함께 몇자 적어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나는 아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 환히 들여다 볼 수 있고 아들도 집안 일을 소상하게 알 수 있으니 아들의 「아이디어」는 향수와 외로움까지 말끔히 씻어간다고 대견해 하고있었다. <노>

<3·5급의 실력|조남철씨「부자 바둑」평>
한국기원 조남철씨는 상씨 부자의 서신 대국 기보를 보고 『3·5급의 바둑으론 아주 잘둔 바둑으로 아들이 우세하다』고 평하면서 『전문적인 견지에서 보면 정석에서 몇 군데 벗어난 곳이 있지만 특색이 있어 좋다』고 했다.
9일 새벽 서면 기보를 일일이 바둑판에 옮겨 본 후 이렇게 말한 조씨는 『기보의 상하가 바뀌었다』고 지적하고 중반 지난 이 대국은 끝내기라면서 『이 바둑을 보니 부자의 격의 없는 정을 스스로도 느낄 것 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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