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DJ 사전교감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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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의 대북 비밀 지원설이 갑자기 베일을 벗고 있다. 이 과정에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측과 청와대 간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관심사다.

물론 양측은 "사전조율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문제를 놓고 어떤 형태로든 교감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盧당선자 주변에서는 "이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30일 현대상선의 2억달러 대북 제공설이 보도되자 盧당선자 핵심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현 정부 임기 내 해결'을 주장하고 나온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임채정(林采正)인수위원장은 30일 한국표준협회 조찬회에서 "사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 자신이 상처를 입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강조했다. "털 것은 털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 정부와 이 문제의 해법에 대해 조율이 없었다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또 향후 대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짐작하기 어려운 사안을 밝히자고 나설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현 정부와 새 정부 사이의 교감을 짚어볼 수 있는 단초가 있다. 지난 15일 문희상(文喜相)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의 이른바 '통치행위' 발언이 그것이다.

文내정자는 "고백할 것이 있으면 고백하고, 대국민 선언을 할 것이 있으면 선언하는 형태로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며 "공개할 수 없는 통치행위가 있었다면 덮고 넘어가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의혹의 한가운데 있는 김대중 대통령을 겨냥한 것처럼 보인 이 발언은, 거꾸로 盧당선자 측과 청와대 간 조율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햇볕정책의 상징 인물인 임동원(林東源)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당시 국정원장)를 희생양으로 삼아 사태를 수습하는 '빅딜'이 이뤄졌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다른 분석도 있다. 청와대 측이 남북관계 진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지만 이를 盧당선자가 거절했다는 것이다. 신구 정부의 갈등 속에 이런 보도가 불거졌다는 설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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