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공동으로 경작·판매 … 팀플레이가 필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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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해남 세발나물연구회 회원들이 서울로 납품할 세발나물을 채취하고 있다. 이들은 세발나물의 재배·출하·정산을 공동 관리해 납품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해남=프리랜서 오종찬

#1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문산면 지원리의 풍광 좋은 한 마을. 10여 명의 중년 남성들이 땀을 흘리며 집을 짓고 있었다. 서천군귀농인협의회 회원들이 목조 생태주택을 짓는 현장이다. 건축주도, 집 짓는 기술자도, 일을 도우며 기술을 배우는 사람들도 모두 귀농인이거나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이다. 건축주 김학수(51)씨도 직접 참여하고 있었다. 서울이 고향인 김씨는 “지난해 협의회가 마련한 귀농투어를 경험한 뒤 이주를 결정했다”며 “협의회와 회원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집을 짓고 정착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천군귀농인협의회 이상구(66) 회장은 “귀농을 택한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살 집을 혼자서 구하거나 짓는 일”이라며 “협의회가 저렴한 가격에 집을 지어주고, 그 과정에서 귀농인들이 기술을 익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농을 준비 중인 이에게도 도움이 된다. 최종 귀농 결정을 못했으니 아직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A씨(47)는 “선배 귀농인들과 대화하면서 실제 귀농이 어떤 것이고 뭘 준비할지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2 “혼자 하면 힘든 일도 여럿이 하면 즐겁습니다. 함께 일해 신나고, 나물값도 잘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19일 오전 7시, 전남 해남군 문내면 예낙리. 인근 16개 농가로 구성된 ‘해남 세발나물연구회’ 농민들이 한데 모여 서울로 보낼 나물을 수확하는 중이었다. 갯벌의 염분을 먹고 자라는 세발나물은 바닷가 사람들이 봄에 즐겨 먹는 얇고 길쭉한 잎의 부추처럼 생긴 나물. 세발나물연구회 농민들은 2007년부터 간척지 14ha의 논을 공동으로 임대해 농한기인 10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 나물을 재배한다. 지난해에만 5000만원의 순익을 올렸다. 임명식(57) 작목반장은 “처음 세발나물을 시작할 때는 개인이 하다 보니 물량이 꾸준하지 못해 상인들의 신뢰를 못 받았다”며 “힘을 합치니까 품질과 수량이 충분해 서울·대전 등으로 팔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천군귀농인협의회와 해남군 세발나물연구회의 경험담은 영세농들의 협업체제가 농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특히 서천군 사례는 최근 줄을 잇는 귀농·귀촌인들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수원시 농촌진흥청 내에 있는 귀농귀촌종합센터 박정승 센터장은 “2002년 769가구에 불과했던 귀농이 지난해 15배인 1만1220가구로 늘었다”며 “이들이 영농기술뿐 아니라 생활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범 사례인 서천군귀농인협의회는 2006년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귀농인 20여 명이 모였다. 지금은 회원수가 4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상담과 귀농투어 외에 자체 사업도 활발하다. 생태건축사업은 지난해 4채의 목조주택을 지었고, 올해도 5채 정도를 지을 예정이다. 각종 작물을 특화 연구하는 연구회도 조직하고 있다. 협의회는 지난해 교육과학부가 주관하는 제1회 평생학습박람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베이비부머 귀농 10년 새 15배 급증
귀농 성공 사례들을 살펴보면 지역 친화와 팀플레이가 필수요소다. 경기도 이천시에 사는 박재훈(57)씨는 귀농 10년차다. 대기업 건설회사에 근무했고, 하청 건설업체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박씨는 “10년 전만 해도 귀농 자체가 드물어 물어볼 데가 없어 고생이 많았다”며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녔던 과거는 다 잊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애경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천천히 마을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농사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복숭아 농사를 짓는 박씨는 2년 전 지역 과수조합 내에 복숭아 공동선별 조직을 만들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이재룡 기술위원은 “상담 사례를 보면 아직 많은 이가 귀농·귀촌을 여유 있는 전원생활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실제로 나 홀로 전원생활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귀촌과 귀농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귀농에 성공하려면 지역사회와의 융화, 공동경작 및 판매 등 팀플레이가 필수라는 얘기다.

전북 진안군에 사는 안모(65)씨가 그런 사례다. 그는 귀촌 8년차에, 귀농 3년차다. 안씨는 “아내의 건강 문제로 급히 내려오다 보니 마을에 정착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며 “요양하며 소일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5년이 넘으니 그대로는 놀면서 살 수가 없더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문제였다. 그는 “농사를 안 지으니까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으면서 마을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나 홀로' 고집하면 실패 가능성 커
귀농귀촌종합센터의 임은성 농촌지도사는 “귀농 실패 사례들을 보면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던 귀농자 B씨의 예를 들었다. 경기도의 한 소읍에 귀농한 그는 허브 농사를 시작했다. 인근 마을은 물론 면 단위에 유일한 허브농장이었다고 한다. 농사가 처음이면서도 유망하다는 말만 듣고 지역과 무관한 작물을 하니 도움받을 곳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지역주민과의 교류는 없고 주말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직장 시절 인맥 등과만 어울리다 결국 실패했다.

반면 지역주민과 제대로 화합할 수 있게 되면 귀농인들이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경우도 많다. 수십 년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정부 의존도가 높은 기존 농민에 비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엄세웅(55)씨는 2010년 이 마을에 정착한 ‘새내기 귀농인’이다. 하지만 최근에 농식품부가 선정한 귀래권역 종합정비사업의 위원장직을 맡을 만큼 마을에서 인정받고 있다. 엄씨는 “연고 없는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동네 어른들께 진심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일단 마을에 자리를 잡고 나서는 오랜 사회 생활 경력이 빛을 발하며 마을을 이끄는 리더가 됐다. 그는 동물의약품 관련 코스닥 상장 기업에서 20년을 일하며 임원까지 지냈다. 엄씨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보니 유기농 등 요즘 흐름에 대한 관심도 없고, 영농기술도 예전 것을 고집하는 등 변화를 싫어하는 분이 많았다”며 “사회 경험을 살려 눈에 띄는 성과를 내니까 마을 분들도 따라오고, 기대도 커졌다”고 말했다.

서천·오창=이승녕·노진호 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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