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국과 核담판 고집

중앙일보

입력

친서에 담긴 메시지에 불만 가능성...이라크사태 관망 시간벌기 분석도

대통령 특사인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 면담 불발은 무엇보다 북핵 문제를 북.미 간의 양자 논의 구도로 끌고가겠다는 북측의 확고한 뜻 때문으로 판단된다.

"5(남북한.일본.호주.유럽연합)+5(안보리 상임이사국)협의체 구성 등 다자 협의 문제도 모두 언급했다"는 林특보의 29일 설명에도 불구하고 남측 특사와 핵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에 대한 우려가 북한 지도부 내부에서 대두했을 것이란 얘기다.

또 지난해 4월 남북 관계 현안 타개를 위한 林특보의 방북 때와 달리 북.미 사이와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얽힌 핵 문제에 대해 金위원장이 나서는 게 부담이 됐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핵 문제를 미국의 북핵 대응과 이라크 공습 등 조치를 지켜보며 풀어가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관측에도 불구하고 특사 파견 제의를 수용하고도 왜 金위원장이 林특보와의 만남을 피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친서까지 휴대한 특사를 그대로 돌려보낸 것은 외교적 결례인데다 지난 20일 러시아 대통령 특사인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과는 6시간 회담했다.

林특보가 회견에서 면담 무산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林특보의 친서에 담긴 대북 제안이나 미국.일본 측의 메시지를 북한이 미흡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야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한 우리 입장을 그대로 전달한 것은 성과"라고 설명했다.

물론 군사분계선(MDL)통과 문제 타결에 따른 경의선 철도 연결과 금강산 육로관광 일정을 잡는 등 부분적인 진전은 있었다. 또 이종석 인수위원을 통해 노무현 당선자 측의 대북정책 구상을 전달하고 이를 위한 핵 문제 조기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닷새 전 특사 파견 발표 때 정부가 "우리 입장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하고 결단을 촉구하는 기회가 된다"며 의미를 부각한 것과 비교하면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