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동안거(冬安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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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재종(1957~) '동안거(冬安居)' 전문

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 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개구리의 동안거는 입을 딱 붙이고 안 먹는 것이고, 곰의 동안거는 굴 속에서 한잠 푹 자는 것이다. 나무의 동안거는 알몸으로 추위를 견디는 것이고, 승려의 동안거는 한 곳에 틀어박혀 참선하는 것이다. 말이 안거(安居)지 들여다보면 고된 수행이다. 겨울은 수행하기 좋은 계절, 개구리.곰.나무.승려 할 것 없이 몸이 수척해지도록 수행을 한다. 그렇지만 한겨울에도 시장의 열기는 열대야처럼, 사막의 전쟁처럼 후끈거리지.

최승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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