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감시기능과 중동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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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의 평화유지를 위한 노력은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평화감시」의 방법이며 또 하나는 「유엔」군의 파견이다. 전자는 소규모의 조직으로 가능하며 사건의 조사 또는 보고가 그 임무로 되어있다. 후자는 보다 적극적인 수단으로서 어느 정도의 병력이 필요하며 적대하는 군사력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 그 임무로 되어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에 걸친 「유엔」의 역사를 회고할 때 「평화감시」의 방법이나 「유엔」군의 파견이 그렇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첫째로 평화감시단의 파견은 일찍이 1949년 2월 24일 「팔레스티나」 감시단을 비롯해서 1952년의 「그리스」 대 「알바니아」 및 「불가리아」국경에 대한 감시단. 그밖에 「파키스탄」 대 인도 국경에 대한 감시단 등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동사태에서 보는바와 같이 「팔레스티나」 감시단은 그 지역의 분쟁을 억지하거나 해결하지 못하였다. 또 「파키스탄」과 인도간의 분쟁은 역시 마찬가지이다.
둘째로 「유엔」군의 파견은 일찍이 한국전쟁을 비롯해서 중동·「콩고」·「키프로스」 등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중동·「콩고」·「키프로스」는 의연히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경우 「유엔」의 집단행동이 성공한 것은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 때문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문제는 「적극성」여부에 달려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평화유지를 위한 「유엔」의 노력에는 아직도 한계가 있으며 적극적으로 노력할 여지는 많다고 보겠다. 그렇지만 「유엔」의 종래와 같은 노력이라 하더라도 전연 취해지지 않을 때의 상황이라는 것은 더욱 위험한 사태가 연출되리란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중동사태를 고찰할 때 지난 5월 19일 「유엔」군의 철수로써 급각도로 악화된 것을 상기하면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또 중동전쟁이 6월 10일 휴전으로 들어갔으나 「유엔」이 권외에서 방관한 탓인지 최근에 다시 「이스라엘」과 통일「아랍」공화국간의 교전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태를 그대로 두는 한 중동전쟁의 재발위험성은 항시 존재하는 것이다.
10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수에즈」운하를 따라 설치돼있는 「이스라엘」과 통일「아랍」공화국간의 휴전선 양편에 「유엔」감시단을 상주시키자는 「우·탄트」사무총장의 제안을 승인하였다. 이는 양국간의 전쟁위험을 억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는데서 자못 의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중동에 새로운 「감시단」을 파견했다고 해서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건의 조사나 보고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분쟁을 최소한도로 억지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동 지역에서 「유엔」군이 철수한 이래, 공백상태로 돼있던 것에서부터 「유엔」의 노력과 조정기관이 재생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유엔」의 적극적인 노력이 될 것이다. 중동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관계국간의 적대행위중지와 상호권리의 존중, 무기경쟁의 중지 등 보다 근본적인 조건들이 해결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엔」안보리는 감시단 파견에 뒤이어 전기한 근본적인 조건들을 해결함에 과감하게 또한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적극성」을 결할 때 중동위기의 불씨는 의연히 심부에서 도사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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