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또 … 오바마 '약한 미국' 논란에 휩싸일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일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담화에서 “폭발 사건 범인을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했다. [워싱턴 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보스턴 테러 사건 이틀째인 16일 오전(현지시간) “이번 사건은 테러 행위”라고 규정했다. 전날 테러라는 용어 대신 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연방수사국(FBI)이 테러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는 아직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른다”며 “하지만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 책임이 있는 개인이든 단체든 정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스턴마라톤 테러 사건은 9·11 이후 12년 만에 미 본토에서 발생한 테러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성명에서 ‘테러’란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성급한 결론을 내지 말자”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백악관 관계자들은 이미 이번 사건을 “테러”라고 규정지었다.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마이클 매콜(공화당·텍사스) 위원장은 “이번 폭탄 공격은 테러리즘의 징후”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사건의 성격이 규명되지 않아서인지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로선 집권 5년 만에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 사건의 배후가 누구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테러사건을 분석한 기사에서 오바마 취임 이후 극우 보수주의 단체인 ‘패트리어트 그룹’의 규모가 8배나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총기 규제, 동성 간 결혼 인정 등의 이슈로 보수와 진보를 편가르기 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내부 극우단체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책임론의 화살은 오바마에게 향할 수 있다. 알카에다 같은 외부세력의 테러로 밝혀질 경우에도 공화당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9월 11일 발생한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습격사건의 배후도 아직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공화당은 오바마가 ‘약한 미국’을 만들어 놓은 결과라고 비판해 왔다. 테러 대응능력도 일단 시험대에 올랐다. 오바마는 사건 직후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장관 등의 보고를 받은 뒤 “조사와 대응에 연방정부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사회는 또다시 테러의 트라우마에 요동치고 있다. 마라톤 경기를 중계하던 기자는 폭발사고 직후 “공격 당했다(We’re attacked)”고 소리쳤다. WP는 ‘보스턴의 비극’이라는 기사에서 “26.2마일(42.195㎞)의 마라톤 현장이 미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새겼다”고 전했다. 사건 후 워싱턴 등 주요 대도시에는 보안조치가 대폭 강화됐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보스턴 인근 지역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정치·경제에 깊고 넓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당장 국방·안보 분야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 12일 상원 정보위에서 연방재정 자동삭감을 불러온 시퀘스터의 문제를 언급하며 “정보기관의 테러 대응 능력이 떨어져 9·11테러 직전 수준으로 취약해질 것”이라며 “테러 초기 공격의 징후를 놓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었다. 반테러 분위기는 북한 문제에서도 강경론을 불러올 수 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