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50억 들여 한승수기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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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강원도 춘천시가 이 고장 출신으로 유엔총회 의장을 지낸 한승수 전 총리의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춘천시는 한 전 의장의 고향인 서면 장군봉 인근에 50억원을 들여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춘천시는 이를 위해 기념관 기본설계비 5000만원을 추경예산안에 편성했으며 춘천시의회 산업위원회는 15일 이를 심의 의결했다. 예산안은 16, 17일 예산결산위원회 심의와 18일 본회의 심의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춘천시는 기본설계비 예산이 의회를 통과하면 국·도비를 확보해 2014년부터 사업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한승수기념관 건립 구상은 지난해 10월 서면 출신인 춘천시의회 박찬홍 의원이 제안했다. 박 의원은 “한승수라는 춘천의 걸출한 인물을 관광 자원화하고 후진의 롤모델로 만들기 위해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춘천시도 뜻을 같이해 충북 음성의 반기문 평화광장 및 생가 등을 벤치마킹하는 등 본격 추진에 나섰다. 춘천시 손대식 관광개발담당은 “한 전 의장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존경하는 멘토 세 명 가운데 한 분으로 교육적으로나 관광 자원으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춘천시의 이러한 논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반기문 사무총장을 거론한 춘천시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의견이다. 임기 1년으로 지역별 순환 원칙에 따라 총회에서 투표 없이 선출하는 유엔총회 의장을 임기 5년의 유엔 최고행정관인 사무총장과 견줄 수 없다는 것이다. 춘천시민연대는 16일 “춘천시민이 동의할 근거도 찾아볼 수 없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없었다”며 “당사자의 출신지 주민들로부터 건의가 있었다고 재정자립도 28%인 춘천시의 예산을 낭비하려는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림대 박준식 사회학 교수는 “한 전 총리가 춘천이 배출한 인물이긴 하지만 과연 기념관 건립이 타당한지 시간을 갖고 충분히 토론한 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승수기념관은 지난해 12월 춘천시 2013년 예산안에 편성된 기본설계비 5000만원을 춘천시의회가 전액 삭감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 전 의장의 고향인 서면 지역 단체장과 주민이 최근 시의회에 기념관 건립을 요구하는 건의서와 서명부를 전달하자 춘천시가 이를 받아들여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했다.

춘천=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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