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표 부진, 중국 G쇼크 악재 … 17조 추경이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연초부터 따로 놀던 한국 주식시장. 16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투자자들은 그 덕을 봤다. 8%를 밑돈 중국 1분기 경제성장률로 인해 국제금융·상품시장이 패닉에 빠졌건만 코스피시장은 상승 마감했다.

 전날 국제시장은 아우성이었다. 미국 뉴욕주식시장의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1.8%, 나스닥지수는 2.3% 하락했다. 원인은 중국과 미국이었다. 안 그래도 중국 때문에 비틀대던 차에 악화된 미국 경기지표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하필 지표가 미국 경기의 근간을 흔드는 부동산과 관련한 것이어서 영향이 컸다.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는 이날 4월 주택시장지수가 6개월 만에 최저치인 4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 지수가 50을 넘으면 주택경기 회복을 뜻하고, 5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상품시장은 주식시장보다 타격이 훨씬 심했다. 뉴욕 상품거래소(COMEX)에서 국제 금값은 33년 만에 최대 폭인 140.4달러(9.4%) 하락해 1트로이온스(31.1g)당 1360.6달러가 됐다. 금은 전 거래일인 12일에도 4.1% 떨어진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에 투자했던 ‘헤지펀드의 제왕’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이 이틀 새 9억7300만 달러(약 1조1000억원)를 잃었다고 보도했다.

 은은 11.3%, 백금은 4.8%, 서부텍사스유는 2.8% 하락했다. 세계 최대 원자재 수요국인 중국의 성장 둔화가 원자재시장에 재앙을 뿌린 것이다.

 한국 코스피시장 역시 출렁였다. 오전 한때 코스피지수가 1900 아래로 내려갔다. 전날 중국의 1분기 성장률 발표에도 1920 선에 마무리됐던 코스피시장이다. 메리츠종금증권 은성민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경기지표 부진이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했다.

 요동은 쳤지만 최종 결과는 플러스였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1.76포인트(0.1%) 오른 1922.21, 코스닥지수는 4.96포인트(0.9%) 상승한 558.95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연중 최고치까지 갈아치웠다.

 공신은 17조3000억원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안 발표였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가 확인되자 투자자들이 주식을 샀다”고 말했다. 사실 각국 정부가 돈을 마구 뿌리다시피 하며 경기부양에 나서는 데도 한국 정부는 미적거리는 것이 주가 상승에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로 인해 거의 모든 나라 주가지수가 오르는 데도 한국은 맥을 못 추는 ‘디커플링’ 양상을 보였다. 그러다 뒤늦게 발표한 추경이 이번엔 주가 하락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 오후 들어 기관의 저가 매수세가 겹쳤다. 지수가 1900 아래로 내려가면 펀드에 돈이 들어오고 연·기금이 매수를 강화하는 양상의 반복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2분기에 1900 근방에서 2050 전후를 오락가락하는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교보·대신·메리츠종금·신영·유진투자증권의 리서치센터장과 투자전략팀장들의 답변이 그랬다. 상승이 힘든 원인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각종 정책이 시작되는 1분기에 지표가 좋게 나오고 약발이 떨어지는 2분기 지표가 악화되는 일이 최근 3년간 되풀이됐고,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논리였다. 펀드와 연·기금이라는 지지세력이 있기에 큰 하락도 없을 것이라고들 전망했다. 그러나 2분기 막판부터는 하반기 경기회복 기대감이 번지면서 조금씩 오름세가 나타날 것으로 봤다.

 답답한 장세가 반복되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정보기술(IT) 업종은 유망할 것으로 꼽혔다. 5개 증권사 중 3개사가 IT 매력을 인정했다. 유진투자증권 곽병열 투자전략팀장은 “IT는 올해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데다 가장 안정적인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디커플링(decoupling)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 세계 주식시장은 초강세였다. 미국·일본·아세안 모두 마찬가지다.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가 찍어낸 돈이 주식시장에 밀려들어 나타난 현상이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은 주가지수가 하락했다. 세계와 엇간다고 해서 ‘디커플링’이란 표현이 자주 나왔다. 한국 주식시장이 맥 빠졌던 이유는 미국 대형 펀드운용사인 뱅가드의 한국 주식 청산과 북한의 위협, 엔저에 따른 한국 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 등이었다. 한국 정부만 경기부양책을 재빨리 내놓지 않은 요인도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