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30년, 시집 낸 예비역 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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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예비역 대령은 “후회없는 군생활 30년이었다”고 회상했다. [변선구 기자]

“사관학교 졸업앨범에 ‘군인의 삶이 어렵겠지만 한 번 시(詩)처럼 살아보자’고 썼어요. 전역하면서 시집을 냈으니까 30년 전 각오를 지킨 셈이 됐네요.”

 김태은(53·해사37기) 전 해병대 대변인이 시집 『백령, 세한도』(플래닛미디어)를 냈다.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군생활 30년의 상념을 담은 100여 편. 혹독한 야전 생활 한켠에서 느낀 감상을 주로 담았다. 아팠던 기억을 그는 먼저 꺼냈다. ‘내 손으로 탯줄 잘라… 약쑥처럼 쑥쑥 자라리라 믿었건만… 바닷길이/죽음을 가르는 모진 칼날 될 줄이야.’

 시 ‘출항’을 읽는 김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93년 백령도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아랫집 선배가 교통사고로 작은 아이를 잃었어요. 빨리 후송됐더라면 살 수 있었는데…. 1년에 2~3건씩 일어난 일이었어요. 그때는.” 그는 배가 보름만 못들어와도 섬 전체 양식이 다 떨어지는 얘기 등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시에 담았다.

 김씨는 선비 정신을 지닌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군생활 시작 때부터 ‘시간·물질적으론 힘들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사치하며 살자’고 각오를 다졌다.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 같은 이들의 책을 읽고 쉬는 날이면 그들이 머문 곳을 찾아다녔다. 임관 직후 광주에서 세한도 영인본을 구해 벽에 걸어두고, 다산의 첫 귀양지 장기읍성을 찾아가 시를 쓴 것도 그래서다. 시집 이름 ‘백령, 세한도’는 군생활 중 가장 긍지를 갖고 근무한 백령도와, 정신적 지향점으로 삼은 추사의 ‘세한도’에서 따왔다.

 김씨는 ‘민간’ 등단 시인은 아니다. 95년 ‘국방일보’ 현상문예 공모 시에 당선된 게 시사(詩史)의 전부다. 그는 “군인신분이라 신춘문예 같은 데 응모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할 것”이라며 “결혼식 중매를 서 준 김남조 시인이 시를 추천해주겠다고 한 것도 사양했다”고 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모두 해병대 대변인을 맡고 있을 때 겪은 일들이다. “30년을 기록해온 메모를 바탕으로 나름의 군생활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군인으로서 나는 어땠나 하는 자기성찰은 물론이고, 현역이어서 하지 못했던 군에 대한 비판도 다듬고 있습니다.”

 김씨의 가족은 뼛속까지 해병대 가족이다. 두 아들 모두 해병대에 자원했다. 94년 백령도에서 태어난 둘째 현욱(19)씨는 22일 입대를 앞두고 있다. 최근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자 “내 고향은 내가 지키겠다”며 백령도 근무를 자청했다. 김씨는 “아들이 대견할 뿐”이라고 했다.

글=한영익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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