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보로」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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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글라스보로」의 미·소 정상회담은 짧은 동안이지만 초조한 산고를 치렀다. 「알렉세이·코시긴」 수상이 「유엔」을 방문할 때부터 정상회담「설」은 줄곧 「뉴요크」와 「워싱턴」의 하늘에 떠돌았다. 「존슨」이 「코시긴」을 「워싱턴」으로 초대했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난 것은 19일이다. 정식 초청장이 아닌 외교「채늘」을 통한 타진이었다. 금방 「코시긴」은 『노!』했다. 『「유엔」을 방문한 것이지, 나는 「뉴요크」나 「워싱턴」을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 의미는 미국의 수도에 『기어 들어가는 인상』을 추호도 줄 수 없다는 소련의 고자세이기도 하다.
이번 중동문제만 해도 소련은 미국에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주어 온 것이 사실이다. 「뉴요크」의 「이스트·리버사이드」에 진을 친 소련은 고집스럽게 「존슨」이 「뉴요크」로 찾아오면 만날 수도 있다는 「애드벌룬」을 띄웠다. 「존슨」도 역시 『노!』했다. 「뉴요크」는 세계의 외교가이며 그 곳에서의 미·소 정상회담은 너무 선전과잉, 아니면 정치적 이해가 너무 두드러지기 쉽다. 「정상정신」의 변질을 강요당할 지도 모를 위험을 미국은 두려워한 것이다. 「코시긴」쪽에서는 일정대로 22일 「모스크바」로 돌아간다는 냉소를 보였다. 당황한 것은 「워싱턴」 당국이다.
「뉴요크」시의 「칼라일·호텔」에서 두 거두가 만날 것이라는 소문은 어느 쪽에서 낸 것인지 짐작이 간다. 외교심리학은 이런 때 극치를 장식한다. 「워싱턴」은 재빨리 「뉴저지」주의 어디서 만나자고 제의한 것이다. 「뉴저지」주는 「뉴요크」와 「워싱턴」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다. 서로 반반 양보한 인상을 함축할 수 있다. 「코시긴」은 우선 귀국일정을 24일로 늦추어 미국의 초조감을 풀어 주었다. 「러스크」는 서둘러 「뉴요크」의 「그로미코」를 찾아가 마지막 「프로토콜」(의전)을 협의했다. 「글라스보로」 주립대학 총장 저택으로 최종 결정을 본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컬」하다. 「비정치지대」에서 더구나 「진리의 이상촌」인 「캠퍼스」에서 세계의 두 최고 수뇌는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재단할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글라스보로 대학의 정신』이 인류에게 괴로움을 보태주는 『시지프스의 정신』이 되지 않기를 전세계는 간절히 빈다. 「글라스보로」는 「평화의 고향」으로 길이 보존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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