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그대로인데 동북아중심국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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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현 정부나 새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은 말만 내세운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 거래를 하는 데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정해왕(丁海旺.사진)한국금융연구원장은 2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국이 미래에 동북아 중심 국가로 우뚝 서려면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며 오고가는 정부 모두에 쓴 소리를 했다.

그는 우선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금융 관련 법과 제도로는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어렵다"며 "법과 제도를 선진 금융시스템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는 나중 문제라는 것이다. 현 정부 주장대로 금융.서비스 등 물류 중심으로 가든, 인수위측 주장대로 정보기술(IT)의 메카로 가든 우선은 그럴 기반부터 닦아놓으라는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丁원장의 발언은 금융 중심 국가에 무게를 뒀다. 그는 "일본을 비롯해 최근 각 지역에서 경제 중심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국가들은 많았지만 성공한 경우는 없다"며 "이는 금융 중심 국가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하드웨어는 도로.공단 등 지역 인프라를, 소프트웨어는 금융.투자관련 법.제도는 물론 시민들의 선진금융 의식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丁원장은 성공한 금융국가의 예로 영국을 꼽았다.

"영국이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도 각종 금융관련 규제를 완화해 금융기관이나 수요자가 모두 이용하기 편리한 금융 시스템을 만든 데 있다."

한국이 동북아 금융 중심 국가가 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丁원장의 판단이다. 丁원장은 "하지만 지금처럼 너무 구호에만 집착할 경우 주변국들의 견제를 받아 일이 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수위측이 현 정부의 구상과는 달리 동북아 중심 국가 계획을 IT 쪽으로 선회한 것과 관련, 국가 비전을 놓고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잃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다.

금호건설.풍림산업 등 지난해 말 송도 신도시에 아파트를 분양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금융 중심지 계획이 바뀌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문의가 잇따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프리 존스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 전 회장은 이날 "동북아 중심 국가 논의에서 가장 바람직한 목표는 금융센터"라며 "중심 국가라는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진정한 허브 국가를 목표로 한다면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금융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호.이상렬 기자 <hodo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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