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장례식, 처칠 묻힌 성당서 … 다이애나비 수준 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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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의사당에 8일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서거를 애도하는 조기가 걸렸다. [런던 로이터=뉴시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별세에 각계의 애도가 쏟아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스페인 방문 일정을 중단하고 황급히 귀국했다. 영국 정부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가 묻혀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의 장례식을 추진 중이다. 당초 영국 정부는 1965년 처칠 전 총리의 타계 이후 처음으로 정치인의 장례에 국장 수준의 예우를 갖추려고 했었다. 하지만 국장이 아닌 일반 장례식으로 치르기를 원하는 유족들의 뜻을 존중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와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에 준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야박한 평가도 끊이지 않았다. 노동당 정부 시절 외무장관을 지낸 마거릿 베케트는 “대처 시절의 불행한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급진 좌파 성향의 전 런던시장 켄 리빙스턴도 “대처의 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오늘날 저소득층의 삶의 위기는 그의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일갈했다. 좌파 성향의 일간지 미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대처 비판에 앞장서온 칼럼니스트 폴 러트리지의 글이 곧바로 실렸다. 그의 “대처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것은 최악으로의 변화였다”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됐다. 그는 “이제 대처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처는 떠났어도 그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여전하다. ‘대처리즘’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 논쟁의 틀이 아직도 영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영국 노동당의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황급히 “좌파 정치인들도 오늘만큼은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존중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당원들의 경거망동으로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당부로 풀이했다. 노동당은 지난해 전당대회 때 일부 당원들이 대처의 사망을 기원하는 기념품을 만들어 논란에 휩싸였다. 대처의 사진 위에 ‘무덤 위에서 춤을’이라는 문구를 적은 셔츠도 있었다. 대처 총리 시절 노동당에서는 그를 ‘우유 도둑’이라고 불렀다. 복지 축소로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우유도 제대로 못 마시게 됐다는 비난이었다.

 공교롭게도 대처가 세상을 떠난 8일은 영국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의 복지 개혁이 첫 실행에 돌입한 날이다. 아침부터 장애인 수당의 축소를 놓고 나라가 들썩였다. 영국 정부는 실업 수당·아동 양육비 보조금 삭감도 추진 중이다. 복지 예산이 줄어들 때마다 노동당과 노조는 ‘대처리즘의 망령’이 되살아났다고 비판했다. 21년 전 정계를 떠나고, 10여 년 전부터 바깥 활동 자체를 끊은 대처가 정치판에서는 영원한 ‘현역’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가 떠난 뒤에도 대처리즘은 여전히 살아 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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