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도 개고기 논쟁 … 파는 건 불법, 먹는 건 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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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요리 프로그램에서 고양이 요리에 대해 설명하다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이탈리아 요리사베페 비가치. [사진 이탈리아 TV 화면 캡처]

요즘 스위스에선 때아닌 개·고양이 고기 논쟁이 한창입니다. 취리히 지역신문에서 개·고양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익명으로 인터뷰해 실은 기사가 발단이 됐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생 갈렌 지방의 한 농부는 “사람들을 초대해 훈제 개고기를 주면서 쇠고기라고 했는데 모르고 잘 먹더라”고 하더군요.

 스위스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한국에선 정말 개고기를 먹느냐’ ‘너도 먹어 봤느냐’란 질문을 수없이 받았던 터라 의외였습니다. 위의 기사에도 ‘한국과 중국처럼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는 나라’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만 스위스도 ‘일상적’이진 않더라도 먹는 사람이 있긴 있다는 거니까요.

물론 그 숫자는 한국보다 훨씬 적습니다. 스위스동물권익협회는 개·고양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3%쯤 되는 것으로 추산하는데, 이마저도 과장된 수치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먹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스위스의 관련 법은 동물보호론자의 주된 공격 대상입니다. 스위스의 가게나 식당에서 개·고양이 고기를 파는 건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 건 불법이 아닙니다. 키우던 개나 주인 없는 고양이를 잡아먹어도 처벌받지 않는 거죠. 이 법을 놓고 ‘가축이 아닌 친구를 잡아먹는 건 잔인한 행위’라는 주장과 ‘고기는 고기일 뿐’이라는 의견이 대립 중입니다.

 일부 유럽 사람이 한국의 개고기 식용에 질겁하듯 저 또한 유럽의 음식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스페인에 계신 저의 시아버지는 비가 그친 뒤면 근처 숲으로 가서 달팽이들을 잡아오십니다. 그걸 각종 허브와 섞어 나무에 하루 동안 매달아 뒀다가 다음 날 끓는 물에 산 채로 집어넣어 요리해 드신답니다.

스위스에서는 아기를 낳고 이유식을 시작할 때 소아과 의사가 아기에겐 토끼 고기를 먹이는 게 좋다고 해서 뜨악하기도 했죠. 레스토랑 메뉴의 말고기 스테이크에도 아직 적응이 안 됩니다. 얼마 전 이탈리아 TV 요리 프로그램에선 요리사가 고양이 고기를 요리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설명하다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하차한 일도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대표 음식인 파에야(paella)에는 주로 토끼 고기가 들어가는데, 내전 당시 식량난이 심했던 스페인에선 파에야에 토끼 대신 고양이 고기를 넣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때 생긴 표현이 ‘Dar gato por liebre(토끼 대신 고양이를 주다)’인데요, 우리로 치면 ‘꿩 대신 닭’쯤 되겠지요.

물론 지금은 파에야를 만들 때 토끼 고기를 쓰지만 이 표현은 지금도 이어져 ‘사기당했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됩니다. 최근 영국의 한 유명 수퍼마켓 체인이 쇠고기 버거에 말고기를 섞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말고기 파동에 대입하자면 ‘소 대신 말’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먹는 음식은 문화와 종교,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게 토끼인지 고양이인지, 소인지 말인지는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김진경 jeen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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