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세금 짜내기 … 국세청에 수퍼 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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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면 ‘수퍼 국세청’이 돼도 괜찮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3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조사 정보를 국세청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의미로 풀이된다. 공정위의 기업조사 정보를 공유하면 국세청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개인 금융거래 정보, 금융감독원의 주식거래 정보(법 개정 추진 중) 등 ‘3대 거래정보’를 손에 쥐게 된다. 이를 활용하면 세무조사가 아니어도 개인과 기업의 거래를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다. 증세를 하지 않고도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는 게 정부 논리다.

 박근혜 정부 복지공약을 실행하려면 매년 27조원, 5년간 135조원의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벌써 올해 1~2월 두 달간 거둬들인 세수가 지난해보다 6조8000억원 감소했다. 올 예산은 최소 12조원에 달하는 세입 결손이 예상된다. 재원 마련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할 국세청은 초비상이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사정이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세무조사 강화 등 ‘마른 수건 짜내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예 새로운 ‘수건’을 찾아 세원을 넓힐 필요성이 생긴다. 그래서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게 바로 공정위의 기업정보 공유다.

 지금도 국세청은 공정위의 자료를 받는다. 부당 내부거래와 관련해 공정위가 기업을 제재하면 국세청에 자동 통보된다. 하지만 여기엔 외부에 발표되는 공시자료 이상은 담겨 있지 않다. 따라서 조 수석의 발언은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나온 기업의 은밀한 거래 내역 등 ‘원천자료’를 두 기관이 공유토록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이날 “비상장사 대주주가 어떻게 돼 있고 내부 거래가 얼마나 되는지를 공정위가 갖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그런 정보를 과세 당국에서 축적이 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관건은 ‘은밀하면서도 증세에 도움이 되는 거래정보’가 존재하느냐다. 하지만 공정위는 그런 정보는 따로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계열사 내부거래 내용은 법에 의해 조사 결과를 모두 공시하게 돼 있다”며 “공정위가 따로 갖고 있는 대주주 정보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이 법인 간 거래여서 개인 거래에 대한 자료는 애당초 없다는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타 기관에 제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을 바꾸는 것도 만만치 않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우려도 크다. 한 재계 관계자는 “관련 회사를 수직 계열화한 것은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모든 내부거래가 지하경제인 것처럼 문제시하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 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초점이 공정위 조사는 공정거래이고 국세청은 세금 아니냐”며 “조사 내용과 관점이 다른데 이것이 어떻게 악용될지 짐작할 수도 없다”고 했다. 국세청으로의 정보 집중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잦아지고 있다. 정보 집중으로 국세청이 ‘빅 브러더’(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세청이 금감원으로부터 대주주의 주식거래 내역을 받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국세청은 금감원으로부터 과세와 관련된 내용만 받았다. 여기에 국세청에 제공하는 FIU의 정보 범위도 확대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FIU의 국세청에 대한 정보 제공 범위를 현행 ‘조세범죄 관련 정보’로 제한한 것을 ‘탈세혐의 조사 및 체납징수 정보’까지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또 ‘1000만원 이상’으로 돼 있는 의심거래보고 기준금액을 폐지키로 했다. 관련법 개정은 이달부터 시작된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 활용한다는 큰 틀에는 동의하지만 세무 업무 편의를 위해 정상 거래가 포함된 소비자의 모든 금융거래정보를 세무 당국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FIU 설립 당시 법 집행기관에서 독립시킨 것은 중간 분석기관인 FIU를 통해 정부 부처 간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며 “앞으로 국세청의 권한이 커지면서 이런 견제와 균형이 깨질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이날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1인당 최대 100만원을 지원받는 세액공제제도를 4년 만에 다시 도입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올해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정부는 또 295개 공공기관에서는 내년까지 비정규직 직원 중 1만5000~2만 명을 사실상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키로 했다. 올해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자 규모도 지난해보다 10.8% 증가한 총 2143명으로 확대된다.

김창규·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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