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 호남이 가장 덜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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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군 점암면 용정마을은 29가구가 사는 농촌마을이다. 마을 어귀에는 대형 금연 마크와 함께 금연마을이라는 것을 알리는 팻말이 있다. ‘이곳부터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라는 경고문도 들어 있다. 2008년 9월 마을 흡연자 27명이 금연을 선언했고 넉 달 후 금연마을이 됐다. 하지만 한 명이 다시 담배를 피웠고 외지에서 흡연자 3명이 이사 오면서 금연마을은 유지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흡연자나 방문객은 동네에서 대놓고 담배를 못 피운다. 주민들이 주의를 주기 때문이다. 또 30명 가까이 되는 이 마을 남정네 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5~6명 정도지만 주정뱅이는 거의 없다. 마을 이장 송용갑(63)씨는 “방문객들이 팻말을 보고 동네에서 담배 피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에는 술 안 마시는 남자가 없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이 술을 끊었다”고 말했다.

 용정마을과 같은 금연·금주 문화 때문일까. 지방에서 술·담배를 가장 적게 하는 곳은 호남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전북의 지난해 성인남성 흡연율(44.4%)은 17개 시·도 중 두 번째로 낮았고 전남(45.4%)은 6위였다.

전통적으로 흡연율은 건강에 관심이 높은 서울(1위·42.6%) 등 도시 지역에서 낮게 나타난다. 이를 감안하면 전남·북이 도(道) 중에선 최상위권인 셈이다.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한자리에서 7잔(여자는 5잔) 넘게 술을 먹는 것을 고위험 음주라고 하는데 이 비율(성인남녀)이 가장 낮은 곳도 전남(13.5%)과 전북(13.7%)이었다.

반면 흡연율이 가장 높은 광역자치단체는 세종시(51.3%)였다. 강원·제주·경북·충북이 뒤를 이었다. 고위험 음주 비율이 높은 것도 세종·강원·제주 순으로 흡연율과 같았다. 세종시의 경우는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충남 연기군이었던 곳이라 조사 대상 인원이 적었다는 한계가 있다.

 지역별로 흡연·음주율이 차이가 나는 것은 여권(女權)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관리과 박혜경 과장은 “대개 아내가 남편의 흡연과 음주에 잔소리를 하는데 전남·북은 잘 먹히고, 강원·경북 등은 상대적으로 덜 먹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가족관계 만족도와 가사노동시간 등 가정 분야 성평등지수(2011년)를 보면 전남이 가장 높았다. 여권과 흡연·음주율은 반비례한다는 해석이다. 용정마을 이장 송씨도 20년 전에 30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송씨는 “아내 눈치를 보느라 방에서 담배를 못 피우고 마당이나 들에서 피웠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2012년 지역사회건강조사는 지난해 9~11월 전국 253개 보건소에서 22만77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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