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문 기자
신용평가 업계가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최근 우리투자증권이 200개 기업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매겨 기관투자가들에게 돌린 때문이다. (중앙일보 3월 29일 B2면)
신용평가사들이 볼 때 등급 책정은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하는 ‘불가침의 영역’. 이를 침범당한 반응은 다양했다. 누구는 “증권사는 자기가 가진 회사채 등급을 높게 주는 식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구는 위법 가능성을 제기했다. “ 임의로 신용등급을 평가·공개하는 건 유사 신용평가 행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발에 앞서 신평사들이 돌아봐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국내 회사채 신용등급에 거품이 껴 있다는 건 새삼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다. A등급을 받은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게 현실 아닌가. 웅진그룹이 그랬고, LIG건설이 그랬다. 법정관리 신청을 한 뒤에야 신평사들이 투기 등급으로 강등한 ‘뒷북’의 전형이었다. 심지어 회사채 시장에선 이런 말이 나올 정도다. “법정관리나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같은 게 아닌 한 신용등급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국내 회사채의 약 80%가 A등급이 돼 버렸다. 이래서야 옥석이 구분될 리 없다. 오죽하면 기관투자가들이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하소연했을까. “회사채 가격이 신평사 등급과 잘 맞지 않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투자증권은 자체적으로 평가 체계를 만들어서는 신용등급을 매겨 배포했다고 한다. 행여 위법(유사 신용평가)이 될까 일부 기관투자가들에게만 서비스로 제공했다. 실제 우리투자증권이 행한 정도는 위법이라 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당국의 해석이다.
전후 사정이 이런데 신평사가 반발부터 앞세우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거품 낀 신용등급을 믿었다가 손실을 본 웅진그룹·LIG건설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지금은 반발보다 신평사들의 반성이 먼저여야 할 것 같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