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신용평가사들, 반발보다 반성할 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신용평가 업계가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최근 우리투자증권이 200개 기업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매겨 기관투자가들에게 돌린 때문이다. (중앙일보 3월 29일 B2면)

 신용평가사들이 볼 때 등급 책정은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하는 ‘불가침의 영역’. 이를 침범당한 반응은 다양했다. 누구는 “증권사는 자기가 가진 회사채 등급을 높게 주는 식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구는 위법 가능성을 제기했다. “ 임의로 신용등급을 평가·공개하는 건 유사 신용평가 행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발에 앞서 신평사들이 돌아봐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국내 회사채 신용등급에 거품이 껴 있다는 건 새삼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다. A등급을 받은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게 현실 아닌가. 웅진그룹이 그랬고, LIG건설이 그랬다. 법정관리 신청을 한 뒤에야 신평사들이 투기 등급으로 강등한 ‘뒷북’의 전형이었다. 심지어 회사채 시장에선 이런 말이 나올 정도다. “법정관리나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같은 게 아닌 한 신용등급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국내 회사채의 약 80%가 A등급이 돼 버렸다. 이래서야 옥석이 구분될 리 없다. 오죽하면 기관투자가들이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하소연했을까. “회사채 가격이 신평사 등급과 잘 맞지 않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투자증권은 자체적으로 평가 체계를 만들어서는 신용등급을 매겨 배포했다고 한다. 행여 위법(유사 신용평가)이 될까 일부 기관투자가들에게만 서비스로 제공했다. 실제 우리투자증권이 행한 정도는 위법이라 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당국의 해석이다.

 전후 사정이 이런데 신평사가 반발부터 앞세우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거품 낀 신용등급을 믿었다가 손실을 본 웅진그룹·LIG건설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지금은 반발보다 신평사들의 반성이 먼저여야 할 것 같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